ADVERTISEMENT

<음식과문화>1.국적 '원조' 논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발칸반도는 항상 분쟁중.화전(火戰)도,냉전(冷戰)도 아닌 음식전쟁이다.음식이 원래 어느나라 것인지를 따지는 국적 논쟁이 민족감정의 도화선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분쟁거리가 커피.원두를 껍질째 갈아 컵 크기의 작은 쇠그릇에 담아 끓여낸 아랍풍 커피를 국제적으로는 터키식 커피라 부른다.엄청나게 진해 설탕을 듬뿍 넣어 먹는데,껍질가루가 그대로 남아 걸쭉하다.원래 아랍인의 기호품이던 것

을 발칸반도를 3백년 가까이 지배한 오스만 터키제국이 받아들여 영내에 퍼뜨렸다.

지금은 전세계에서 터키식 커피라는 통칭으로 애음(愛飮)된다.하지만 똑같은 것을 그리스에서는 그리스식 커피,유고슬라비아에서는 세르비아식 커피,불가리아에서는 불가리아식 커피라고 부른다.그리스에서“터키식 커피 주세요”라고 한번 주문해보

라.한국에서 '기무치 주세요'라고 말한 것과 비슷한 대접을 받게될 것이다.

다진 고기를 야채와 향료로 양념해 가운데를 가른 가지에 넣고 찐 다음 올리브 기름을 듬뿍 친 요리가 그리스 특산요리 무사카다.이 음식은 그리스에서 터키로 전래된 것.그러나 터키에서“그리스 음식 무사카”라고 말하는 것은 서양인이 한

국인에게“아리가도”라고 말했을 때와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유럽연합(EU) 내에는 독일에 초청 노동자로 갔다가 주저앉은 터키인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4백50만명이나 살고 있다.이들이 유럽에 퍼뜨린 대표적 음식이 아랍에서 유래된'케밥'.되너케밥과 시시케밥 두 종류가 있다.되너는 1m쯤 되는

긴 꼬챙이를 세운뒤 고기를 줄줄이 끼우고 옆에서 불을 가해 빙글빙글 돌리면서 구운 것이다.먼저 익은 겉부분부터 잘라 아랍식 무발효빵 가운데 담아 함께 먹는다.시시케밥은 일종의 꼬치구이다.이제는 유럽의 대중음식으로 자리잡아 어디에서

도 먹을 수 있다.

문제는 케밥이 터키인의 전유물이 아니라는데 있다.초청 노동자로 독일로 들어와 유럽 전역에 1백50만명이 퍼져 있는 옛 유고슬라비아인과 유럽공동체 회원국인 그리스인,그리고 키프로스인들 역시 케밥을 고향에서부터 먹어왔기 때문이다.모두

터키와 감정이 좋지 않은 나라 사람들이다.이들 앞에서'케밥=터키음식'을 말했다간 맛없는 부위만 얻어먹기 일쑤다.

일부 발칸인들은 음식을 통한 문화교류 실상을 감정적으로 부정함으로써 자존심을 세울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그 결과는 증오와 분쟁으로 나타나 스스로를 옥죄는데도-.우리는 비슷한 일이 없는지…. <채인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