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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억에 팔린 국보급 책도 있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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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대구시 중구 봉산동 ‘문화의 거리’ 안 금요고서방 경매장. 한 달에 한 차례, 둘째 토요일 오후 4시에 이뤄지는 고서 경매가 이달 13일로 50회를 맞았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5년째다. 국내 고문헌 거래 분야에선 유례가 없는 일이다.

금요고서방은 이날 50회 경매를 기념해 190여 가지 희귀 자료를 선보였다. 출품 자료는 보물 1149호와 동일본인 ‘공자가어(孔子家語)’를 비롯해 왕실 자료인 ‘국조보감’, 김홍도의 그림이 있는 ‘오륜행실도’와 의학·병법·유묵 등이 망라됐다. 공자가어는 경매 출발가로 2000만원이 매겨졌다. 경매에 앞서 이날 오후 2시 출품된 물건들이 공개됐다. 관심 있는 고서를 직접 넘겨 보는 기회다.

이날 경매장엔 전국에서 80여 명이 찾아왔으며, 2억7000여만원 어치가 거래됐다.

고서를 취급하는 경매장은 국내에 8곳이 있지만 금요고서방을 빼고는 대부분 미술품과 고서를 같이 거래한다. 금요고서방 박민철(55·사진) 대표는 1999년 업계에서 처음으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온라인 쇼핑몰을 열었다. 쇼핑몰은 5년 뒤 회원이 1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그때쯤 박 대표는 오프라인 경매를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하지만, 주변에선 지방에서 되겠느냐며 말리는 분위기였다.

그는 특유의 뚝심으로 20여 년 구상을 밀어붙였다. 2004년 11월 마침내 오프라인 고서 경매가 시작됐다. 첫 매출은 2000여만원. 소문을 타고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1회 매출이 평균 1억원으로 뛰었다.

“위탁 자료는 모두 공개합니다. 검은 거래란 있을 수 없어요. 출처가 분명하니 안심하고 구입할 수 있습니다. 개인 거래와 달리 전국 회원이 인터넷을 통해 사전에 모두 볼 수 있으니 가격 평가도 객관적이 됩니다.”

문화재청은 경매 물품 중에 도난문화재가 있는지를 점검한다. 검은 물건이 들어올 수 없는 구조다. 박 대표는 “이것만큼은 분명 기여한 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 사회에도 기여했다. 고서에 관심 있는 이들이 대구로 몰려들게 만든 점이다. 경매 때는 수도권은 물론 충청·호남에서 찾는 사람이 60%를 차지한다. 회원은 상당수가 한문학·국문학 등을 전공하는 대학 교수들이다. 박물관 관계자와 종중 인사들도 있다. 위탁자는 종가가 많은 편이다. 그동안 나왔던 경매 물품 중에는 국보급도 있었다. 금속활자 계미자로 찍은 ‘송조표전총류(宋朝表箋總類)’는 무려 14억원에 거래됐다. 보물급 고서는 수도 없이 나왔다. 낙찰률은 70∼80%.

박 대표는 “적어도 한국학 자료만큼은 대구가 수도”라고 말했다. 그는 “조선시대에 안동 등 경북 북부지역에서 서책 간행이 활발했고, 대구는 감영이 있는 행정 중심지였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대구에는 지금도 고서를 다루는 전문점이 12곳이나 있다.

박 대표는 한때 화랑을 운영했다. 그 때 위작 시비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는 “고서는 가짜가 없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고서를 다루면서 한문투성이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겁이 안 난다고 했다. 반쯤 서지학자도 됐다. 경매 때 만드는 출품 목록의 자료 해제는 본인이 직접 정리한다. 학계에 통용되던 활자본의 연대를 바로잡은 적도 있다. 그는 이제 자신의 바통을 이을 사람을 찾는 중이다.

글=송의호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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