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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와티 印尼 대통령 "절망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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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글로리아 아로요(사진(右)) 필리핀 대통령과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左)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2001년 취임 때부터 늘 닮은꼴 대통령으로 불려 왔다. 우선 부패 혐의로 탄핵 심판대에 섰던 전임자를 몰아내고 대통령에 올랐다는 점이 닮았다. 부녀(父女) 대통령이란 점도 같다. 하지만 집권 1기를 끝낸 지금 두 사람은 재선 가능성에서 운명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아로요@마닐라=지난달 10일 치러진 필리핀 대선의 공식 개표결과는 섬과 치안 불안지대가 많은 지리적 특성상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재선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25일 아로요가 1241만표, 야당 후보인 페르디난드 포가 1149만표를 각각 얻었다고 비공식적으로 밝혔다. 아로요 진영은 이미 승리를 선언했다. 포 후보가 부정선거라고 주장하지만 결과를 뒤집기엔 역부족이다.

아로요는 선거 유세 초반 한때 10%포인트 차로 포에게 밀리기도 했다. 영화배우 출신으로 '필리핀의 존 웨인'이란 별명을 가진 포의 유세장은 늘 만원이었다. 서민과 빈곤층은 아로요에게 등을 돌린 것처럼 보였다. 아로요의 집권 3년여 동안 인플레가 10%대를 유지하면서 빈부 격차가 더욱 벌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은 아로요의 편이었다. 갈수록 포의 약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고교 중퇴의 학력이나 행정.정치 경험이 없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정책을 묻는 질문에 늘 "연구 중"이란 말로 얼버무린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유권자들은 그런 포를 보며 조셉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 포처럼 영화배우 출신인 그는 집권 2년반 동안 국정을 도탄에 빠뜨렸으며 뇌물.도박.여성 추문을 일으켰다. 일간지 인콰이어러는 '포에게 필리핀이 기대할 수 있는 일'이란 제목을 크게 달고 그 아래 본문을 백지로 처리했다.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메시지다.

반면 아로요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조지타운대학을 다녔고 경제학 교수를 지낸 엘리트다. 아버지는 1961~65년 대통령을 지낸 디오스타도 마카파갈이다. 부통령을 지내다 2001년 시민.학생과 가톨릭 교단, 군부가 합세한 에스트라다 축출운동의 결과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업적은 시원찮다. 경제성장률은 태국.말레이시아 등 다른 동남아 국가보다 저조했다. 부패와의 전쟁은 남편이 수뢰사건에 얽히면서 유야무야됐다. 테러에 쿠데타 기도까지 겹쳐 정국은 늘 뒤숭숭했다. 그의 집권 2기도 순탄치 않으리란 예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메가와티@자카르타="이대로 가면 우리가 지는 거 아닌가?" 메가와티 대통령이 지난달 5일 실시된 총선의 중간결과를 보고받으면서 힘없이 던진 질문이다.

메가와티의 재선은 현재로선 거의 절망적이다. 우선 첫 직선제 대선(7월 5일)을 코앞에 두고 치러진 총선에서 참패했다. 집권 민주투쟁당은 득표율 19%로 제2당으로 주저앉았다. 지난달 말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서 메가와티의 지지율은 14.7%에 머물렀다. 1위인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전 정치.안보조정장관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인기 하락의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이 '대통령의 자질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인도네시아 국민은 이제 진실을 알았다"고 표현했다.

메가와티는 마흔까지 2남1녀를 키우던 평범한 주부였다. 반독재 투쟁의 구심점이 필요했던 야당은 87년 그를 지도자로 추대했다. 국부로 추앙받는 수카르노 전 대통령의 딸이란 점만 본 셈이다. 자질과 전략, 포부가 있는지는 따지지 않았다. 그는 탄핵당한 압두라만 와히드의 뒤를 이어 2001년 무난히 대통령에 올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개혁을 앞세웠지만 부패는 더 심해졌다. 테러는 빈발했고 치안은 실종됐다. 메가와티는 그래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공식 실업률은 10% 이하지만 실제론 경제활동인구 1억명 가운데 4000만명이 일정한 일자리가 없다. 여론조사기관인 LSI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차라리 수하르토 시절이 더 좋았다"고 응답한 사람이 60%를 넘었다.

유도요노는 여러모로 메가와티와는 대조적이다. 우선 이미지가 참신하다. 군 출신이지만 청렴하다는 평이다. 발리 테러사건을 처리하면서 과단성도 보여줬다. 대중적인 설득력도 갖췄다. 모두 메가와티에게선 찾기 힘든 장점들이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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