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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코너>러시아 경제 발목잡는 기득권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러시아정부의 산업살리기 정책이 관료들의 교묘한 반발과 생산현장의 거부로 뒤뚱거리고 있다.

러시아의 신임 보리스 넴초프 부총리는 취임 첫마디에서“정부공무원등 사회지도층에 외제차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밝혀 국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국민들은 넴초프가 사익(私益)만 챙기는 관리들과 졸부들의 사치풍조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를 통해 러시아 산업살리기를 시도한다며 큰 기대를 표명했다.

그런데 그게 러시아식으로 꼬이고 있다.생산현장,관료들,솔선수범할 지도층이 모두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우선 벤츠.BMW등 외제차를 대체할 유일한 자동차인 볼가의 제작사인 가즈(GAZ)자동차사는“생산여력이 없다”며 퉁명스런 반응을 보였다.

당사자인 관료들은 관용차로 사용하던 외제차를 모두 국산차로 바꾸려면 기존의 관용차를 모두 팔아야 하는데 돈많은 사람들 외에 누가 이 차를 사겠느냐며 그냥 그대로 외제차를 쓰는 것이 국가경제에 더 이롭다고 말하고 있다.

소유주가 국가에서 개인으로 바뀐다는 일 말고는 실질적으로'국산품 애용'이 되겠느냐며 노골적으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여기에다 벤츠 애호가로 알려진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자신과 가족들의 외제차를 없앨 것인지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때문에 이 문제를 너무 강조해도 안된다는'윗분 모시기성 발언'도 쏟아져나왔다.

'공무원의 솔선수범'을 통해 러시아 경제에 신바람을 일으키려한 넴초프의 뜻이 묘한 데서 방해를 받은 것이다.경제살리기가 구호보다 의식개혁과 타성에 젖은 관료들의 자성 없이는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 씁쓸한 사례인 셈이다. [

모스크바=안성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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