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프로 '밤을 잊은 그대에게' 진행 이재성 PD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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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그렇지 않아도 숱이 적은 머리가 자꾸 더 빠집니다.남의 고민까지 함께 걱정하기 때문인가 봐요.”

이재성(50.사진)PD는 박종성(35)PD와 함께 소시민들의 고민을 전화로 상담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든다.KBS 제2라디오의'밤을 잊은 그대에게'.70년대에는 인기를 끈 청소년 음악 프로그램이었지만 95년 봄부터 상담 프로그램으로

바뀌었다.

'밤을…'는 일반적인 법률상담 프로그램과는 다르다.요일마다 다른 사회 저명인사들이 상담신청자들로부터 전화로 삶의 고충을 듣고 위로와 충고를 할 뿐이다.이런 특성 때문에 배우자의 외도.도벽.자녀문제등 사생활에 관련된 상담이 대부분이다

.

“생방송이다보니 PD의 진땀을 빼게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매일 마음을 졸입니다.하지만 상담 이후 밝게 살아가는 사람들 소식이 제게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 힘을 줍니다.”

지난해 11월에는 경주의 50대 남자로부터“아내가 집을 지나치게 자주 나간다.지금도 가출중”이라는 고충을 들었다.방송이 끝난 뒤 제작진은“부인의 행방을 찾아 스튜디오에서 만나 화해하도록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수소문끝에 어렵사리 부인을 찾아냈다.그리고 12월 두사람을 스튜디오로 초청했으나 남편만 나타났다.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부인은 남편 볼 면목이 없어 나오지 않았다.

“큰일이었습니다.생방송인데 차질이 생긴거죠.다시 행방을 찾아 부랴부랴 스튜디오와 전화로 연결했습니다.”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들어만 온나.다 용서한다.”

전화 너머로는 아내의 울음소리만 들렸다.며칠 뒤 이PD는 이들 부부에게 전화를 걸었다.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 마음에서였다.부부는 번갈아 전화를 바꿔가며“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가끔씩은 청취자들로부터“저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는 나의 시련을 극복할 힘을 얻는다”는 편지도 받는다.

“그런 뜻하지 않은 수확들도 적지 않다”며 조용히 웃는 이PD.어김없이 매일 밤10시면 그는 밤을 잊은 채 사람들의 고민을 덜어주려 스튜디오로 향한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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