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주권이양 확실한 건 날짜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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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6월 30일로 예정된 주권이양을 한달 남긴 이라크의 상황은 한마디로 복마전(伏魔殿)이다. 한편으론 외국군 통제권을 둘러싼 국제적 논란이 가열되고, 다른 한편에선 임시정부 구성과 관련해 이라크 내 정파.종파.종족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외국군 통제권이 관건=범아랍 일간 알하야트는 지난 26일 "전후 800명에 이르는 미군 사망과 포로학대 사건으로 위기에 몰린 조지 W 부시 행정부로서는 주권이양이 사태를 반전시킬 마지막 기회"라고 지적했다. 부시가 대통령 선거에 다시 당선되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차질없이 주권을 이양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알하야트는 아랍권에서 여론조사를 한 결과 87%가 주권이양 후에도 이라크가 안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이러한 여론이 형성된 가장 큰 이유로 6월 30일 출범할 이라크 임시정부에 외국 주둔군의 통제권을 포함한 포괄적인 주권이양이 이뤄질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미국이 주권이양 후에도 이라크 주둔 미군의 작전권을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프랑스.러시아.중국 등 반전국은 이라크 주둔 외국군의 통제권을 포함해 보다 포괄적인 주권이양을 요구하며 미국.영국과 대립하고 있다. 이 때문에 주권이양을 보장할 유엔의 결의안 통과도 쉽지 않을 것이다.

◇권력분배 갈등=임시정부의 요직 인선은 이라크 내 정파.종파.종족에 권력을 안배하는 작업이나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이를 둘러싼 각 세력 간의 힘겨루기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원래 라크다르 브라히미 유엔 특사는 요직을 중립적인 기술관료 중심으로 구성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과도통치위의 반대로 결국 총리는 최대 종파인 시아파, 대통령은 수니파, 그리고 부통령은 시아파와 쿠르드인에게 한자리씩 주기로 했다. 하지만 독립을 추진하는 쿠르드 측에서 막판에 대통령이나 총리직을 달라고 요구해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아랍권에서는 이라크의 이러한 갈등이 최종인선 이후 걷잡을 수 없는 폭력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임시정부의 자주성=상당수 이라크인들은 임시정부가 미국의 꼭두각시가 되는 것을 우려한다. 특히 28일 과도통치위가 이야드 알라위를 총리에 지명한 것에 대해 그가 미 중앙정보국(CIA)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라크 전략연구소 사아둔 둘라이미 소장은 "이라크인이 기피하는 인물에게 임시정부를 맡길 경우 연합군 철수를 요구하는 과격세력만 힘을 얻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앞으로 과격세력이 여론의 비난을 받는 임시정부 지도자들을 대대적으로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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