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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B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누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4월6일 NBC-TV의 고참 여기자 안드레아 미첼과의 재혼을 앞두고 있는 앨런 그린스펀(51.사진)은 25일 미국민들에게 큰'결혼 선물'을 안겨줬다.

금리를 소폭 올림으로써 이달로 7년째 접어든 미국경제의 호황이 더 오래 계속되리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같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흔히 대통령 다음으로 영향력이 큰 자리라고 묘사되는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을 그린스펀은 벌써 세번째 연임하며 호황가도를 달리는 미국경제의 조타수 역할을 해오고 있다.

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폴 볼커의 후임으로 FRB의장이 된 그가 관직에 몸을 담기 시작한 인연은 엉뚱하게도 그의'악기 연주자'경력에서 비롯됐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클라리넷.테너색소폰등을 불기 시작했던 그는 전문음악인이 되기 위해 뉴욕의 줄리아드 음악학교에 진학,40년대 초반부터 한 스윙 밴드에서 색소폰.플루트.클라리넷 연주자로 활동했다.

당시 밴드의 매니저였던 인물은 후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 후보 진영의 법률 자문역이 됐고 그의 소개로 그린스펀은 66년 닉슨 진영의 정책연구팀장을 맡게 된다.당시 그린스펀은 뉴욕대에서 경제학석사 학위를 받은뒤 경제예측을 주로 하는

컨설팅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가 뉴욕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74년 포드행정부의 경제자문위 의장이라는 중책을 맡은지 3년이 지난 77년이니,그는 학위보다 타고난 능력과 현장경험으로 중용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FRB의장이 된뒤 몇달만에 터진 증시폭락(블랙 먼데이)사태를 배짱좋게 잘 해결한 그는 부시 대통령 시절 정치논리를 무시하고 금리를 올리기 시작해 90~91년의 경기후퇴를 불러왔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으나 이후 오히려 지금까지 계속되

는 안정성장의 기틀을 닦은 공로자로 평가받고 있다.

파티에서도 앞에 잘 나서지 않는 수줍은 성격의 그는 감정을 잘 절제하며 적을 만들지 않고 경제논리에 충실하면서도 대중감각이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워싱턴=김수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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