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종교의 세속화 시대, 수행자는 시인 돼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스님의 삶은 단순하다. 1978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하고, 현재 설악산 백담사에 있는 자명 스님의 하루도 그렇다. 새벽에 간단히 맨손 체조한 뒤 좌선하다 오전 6시에 가볍게 죽을 먹고 다시 좌선한다. 오후에는 숲길을 산책하다 다시 참선하고, 저녁은 차 한잔으로 대신한다. 자명 스님은 "수행의 길은 단순하고 소박할수록 좋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사색과 수행 중간에 틈틈이 적은 글을 '무소득의 마음'(고요아침 출간)이란 에세이집에 담았다.

시집 '어느 자리의 꽃송이'를 냈던 스님은 이번에 편짓글 형식을 통해 자연과 자유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세상은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의 연속입니다. 무한한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우리가 의지할 바는 무소득의 마음입니다." 자명 스님은 수행을 시인의 작업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 가난한 시대에 무엇을 위한 시인인가"를 자문했던 독일 시인 횔더린처럼 오늘의 수행자는 "종교의 세속화 시대에 무엇을 위한 수행자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영원한 대자유인의 길을 사는 수행자야말로 이 우주 생명의 바다에서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많이 들어본'말 같지만 신간에는 이런 깨달음을 향한 자명 스님의 남다른 행보가 있다. 1994년 조계종 사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유럽.캐나다.일본.호주 등지를 돌며 깨달은 것들, 즉 밖에서 바라본 우리 자신에 대한 일종의 '죽비'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부처의 근본을 잊고 한국적인 것만을 고집하는 한국 불교계에 대한 반성이 있다. 단아한 선화(禪畵)로 유명한 통도사 수안 스님의 그림도 책 내용과 잘 어울린다.

박정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