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톰 행크스 주연 '레이디 킬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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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 미시시피의 한적한 시골. '범죄가 한 건도 없는 마을'이라는 문구가 뻐기듯 벽에 걸려있는 보안관 사무실에, 과연 '할 일'이 없어 의자에 기대 코를 골며 낮잠을 즐기는, 뒤룩뒤룩 살 찐 보안관들을 보여주며 영화가 시작된다. 그렇다면 뻔하다. 이제 이 평온하던 마을에 범죄가 끼어들 것이다! 영화 제목(원제 The Ladykillers)마저 '여자(를 죽이는) 살인마(들)'아닌가.

하지만 '레이디 킬러'는 소름이 끼치거나 무시무시한 범죄영화가 아니다. 조엘.에단 코언 형제는 이 영화에서 자신들의 유머 감각이 여전히 독창적이고 녹슬지 않았음을 뽐낸다. 데뷔작 '블러드 심플'이후 '밀러스 크로싱' '파고' '그 남자는 그곳에 없었다' 등의 범죄 스릴러물에서 음울하면서 냉소적인 유머를 장기로 보여줬던 이들은 이번에는 유쾌하고 밝은 유머로 시종한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살아가는 흑인 노파 먼순 부인(이르마 P. 홀)에게 대학 교수 행세를 하는 신사가 찾아오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기품있고 능란한 언변으로 먼순 부인의 환심을 산 도어 박사(톰 행크스)는 지하실을 좀 빌리자고 제안한다. 안식년을 맞아 동료들과 바로크 음악회를 준비하는데 마땅한 연습실이 없다는 거였다. 하지만 본심은 따로 있었다. 먼순 부인네 지하실과 미시시피 강에 떠 있는 카지노까지 굴을 파 금고를 털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도어 박사가 '작업'을 위해 '금고털이 전문팀'이라고 모은 게 하나같이 덜 떨어진 인물이다. 굴착전문가인 '팬케익'은 평소엔 방송국에서 소품을 담당한다. 하지만 그는 출연한 개에게 방독면을 씌워 질식사에 이르게 할 만큼 고지식하고, 설계도를 빼내기 위해 카지노에 취업한 거웨인은 카지노 관리자와 싸워 해고를 당하는 식이다. 주도면밀함이라곤 도무지 찾아 볼 수 없는 이들을 모아 범행을 도모하자니 도어 박사의 곤란함이 말이 아니다. 툭하면 싸워대는 팀원들을 다독거려야 하고, '교수님들'의 음악을 듣고 싶다며 불쑥불쑥 지하실을 찾아오는 먼순 부인도 속여야 한다.

'레이디 킬러'는 알렉산더 매킨드릭 감독이 1955년에 만든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코언 형제는 설정과 구성, 디테일에서 자기들 식으로 완전히 비틀었지만 원작의 주제 의식은 그대로 살리고 있다. 원작 중에 '누가 더 어리석은가?'라는 대사가 있다. 이 한 마디야말로 '레이디 킬러'를 관통하는 정신이다. 도어 박사를 비롯한 범인들은 먼순 부인을 없애려고 하지만 끝끝내 실패한다. 흑인 노파라 업신여기지만 번번이 당한다. 보안관들까지 먼순 부인을 얕잡아보다 자기 꾀에 넘어가고 만다. 계산에 밝은 듯, 세상 이치를 깨친 듯 으스대는 인물들과 시골에 묻혀 사는 노파, 그들 중에 '누가 더 어리석은가'? 먼순 부인 역의 이르마 P. 홀은 올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탔다. 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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