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속의홍콩>下. 기업마다 생존전략 분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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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홍콩섬 센트럴의 뉴월드타워 21층에 위치한 홍콩 최대의 증권회사 페레그린사.컴퓨터 앞의 1백50여 직원들이 햄버거와 진한 커피 한잔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오후9시 퇴근시간까지 단말기와 씨름하고 있다.홍콩반환 D-1백일을 맞은 홍콩의 세계적 기업들은 한마디로 이같은'분주함' 그 자체다.

홍콩 최대 자본을 쥐고 있는 영국계와 홍콩의 기업들,투자를 대폭 늘려가는 미국계와 언제나 조심스런 일본계등 저마다 반환에 따른 전략수립에 골몰하고 있다.

이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또 어떻게 움직이는 것일까.

親中노선 발빠른 변신

먼저 청콩(長江)그룹의 리카싱(李嘉誠)으로 대표되는 홍콩의 중국계 기업인들을 보자.이들은'영국에서 중국으로'란 대세에 따라 분명한 친중(親中)노선을 걷고 있다.중국계 기업의 홍콩 진출때 안내자 역할을 해왔던 이들은 95년 9월 홍

콩부호 20명이 1억홍콩달러(1홍콩달러는 약 1백원)를 출자해'보다 나은 홍콩을 위한 기금회'를 만들고 또 홍콩특별행정구의 준비위원으로 재계인사가 50명이나 참여,중국편을 들었다.살아남기 위해 중국의 비위를 맞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같은 단순 생존전략에서 탈피,중국시장을 점유하기 위해 적극적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는게'초강국으로 가는 중국'의 저자 윌리엄 오버홀트의 분석이다.즉 홍콩내에서만 통하던 홍콩기업들이 이젠 광활한 중국시장을 발판삼아

세계적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것이다.중국은 바로 홍콩기업들이 세계기업으로 성장하는 뜀틀인 셈이다.

그러나 이들과는 상반된 전략으로 홍콩을 떠나는 기업들도 있다.

84년 중.영의 연합성명 발표직전 그룹의 등록지를 버뮤다로 옮긴 자르딘은 95년 1월에도 5개 계열사의 주식상장 시장을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이전,홍콩경제를 불안케 하는 주범으로 중국의 격렬한 반발을 샀었다.

자르딘측으로선 그 전신이 중국에 아편을 팔았던 동인도회사인데다 49년 중국 공산화 당시 상하이(上海)의 자산이 국유화된 경험때문에 홍콩에서 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예는 어디까지나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같은 영국계 스와이어 퍼시픽그룹은 중국계 기업들과 지분을 나눠갖는 방식으로 이른바 반환이후의'정치보험'에 들었다.캐세이 패시픽 항공사를 독점했던 스와이어는 대세를 짐작,10년전인 87년 홍콩진출 중국자본인 중신(中信)에 주식 2억주를 8% 할인가격에 넘겼고 96년 4월 5억주를 추가 발행,중신태부(中信泰富)에 건넸다.

홍콩텔레콤도 스와이어를 모방,90년 중신태부에 20%의 주식을 팔았다.

미국계 회사들은 반환이후를 비교적 낙관,투자를 늘리는 확대전략이다.

93년 보유자산 6백99억홍콩달러에서 94년 9% 증가된 7백59억

홍콩달러를 기록,영국.일본.중국에 이어 4위를 차지했던 미국은

상하이가 홍콩을 대체하는 경우는 아직 상정하기 힘들다고 진단한다.

일본系 기업은 관망자세

미국 10대 은행중 하나인 뱅커스 트러스트 컴퍼니(BTC)의 루드위그

중국담당 상무이사는“반환후엔 보다 많은 중국기업들이 홍콩에 올테고

이들이 바라는 자금수요가 더욱 커져 영업이 더 활발해질 전망”이라고

말한다.

홍콩에 69개 은행등 2천여 업체가 진출,1천90억홍콩달러의 방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일본은 비교적 조심스럽다.미쓰비시 홍콩지사장이자

일본상공회장인 이시이 요시아키(石井芳昭)는'한나라 두체제'란 단서를

단다.

한나라 두체제만 지켜지면 홍콩 장래는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는 것.

일본상공회의 자체조사 결과 7백50여 업체의 47%가 홍콩의 현

사법제도와 정치안정.인프라시설.인력자원등의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

홍콩내 인력을 더 확충,회사규모를 확대하겠다고 답했다.

싱가포르,홍콩에 商工會

홍콩을 통해 중국과 무역을 하고 있는 대만 업체들도 기존의 투자

전략에서 후퇴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특히 상업(商業)기구에 대한

중국측의 개방적인 정책에 따라 홍콩을 대(對)중국 투자 전초기지로

삼는다는 전략을 수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홍콩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싱가포르는 지난해 7월 홍콩에

싱가포르상공회를 결성하고 회원자격을 자국의 1백개 홍콩진출 업체뿐

아니라 중국.대만.홍콩 화상들에게도 개방, 거대한 화인(華人)조직

구축을 노리고 있다.

싱가포르는 향후 10년내 영업액 1억 싱가포르달러(약 5백50억원)가

넘는 회사를 1백개 이상 배출시킨다는 계획으로 이중 상당수가 바로

홍콩내 싱가포르계 회사에서 나와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홍콩=유상철 특파원]

<사진설명>

활력이 넘치는 증권거래소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뒤에도 홍콩경제는 외국기업들의 중국 진출 전략기지 역할을 통해 이전까지의 번영과 성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홍콩 증권거래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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