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펀치’ 이세돌 삼성화재배 잡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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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세돌 9단이 정상 컨디션이라면 그를 당해낼 기사가 누가 있을까. 구리 9단 정도일까.”

“이세돌 9단은 한때 누구에게도 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아주 안정을 찾았고 더 강해진 모습이다.”

삼성화재배 세계오픈 준결승전의 해설자로 부산에 내려온 김승준 9단, 최명훈 9단 등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다. 15일 황이중 7단과의 준결승 첫판에서 이세돌은 그야말로 고장난 배 같았다. 그는 전날 중국에서 바둑을 두고 끝나자마자 날아왔다. 국수전과 명인전 도전기, 그리고 중국리그가 촘촘히 이어지며 근 3주째 이런 강행군이 이어지고 있었다. 장발로 변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이세돌은 힘겹게 판을 짜 나갔으나 그의 행마는 밋밋했고 중반에 이미 집 부족이 심각해졌다. 덤은 고사하고 반면 승부라는 극단적인 평가도 나왔다.

이 판이 극적으로 뒤집혔다. 조훈현 9단의 말을 빌리면 황이중은 후반에 50번쯤 실수했고 결국 반 집 차로 흑을 쥔 이세돌이 이겼다. 행운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역전극을 엮어낸 놀라운 솜씨는 다른 사람이 쉽게 흉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16일은 휴식일. 이 하루의 휴식이 보약이 되었던지 17일의 2국에서 이세돌 9단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완승을 거뒀다. 느릿느릿 두는 듯싶었으나 어느 순간 전광석화와 같은 공격으로 단숨에 판을 압도해 버렸다. 그날 밤, KTX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이세돌 9단은 문제의 ‘살인적 스케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일정 자체는 충분히 견딜 만하다. 사실은 휴식 때 운동을 한다든지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게 오히려 더 문제인 것 같아 고쳐볼 생각이다.”

기량으로나 체력으로나 전성기를 맞은 만 25세의 이세돌은 서울-중국-부산-서울을 잇는 길고 빡빡한 여정을 끝내며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문제를 돌아보고 있었다.

또 한 판의 준결승전, 즉 중국 기사끼리의 대결에선 쿵제 7단이 17세 소년강자 저우루이양 5단을 2대0으로 꺾었다. 두 판 모두 끝내기에서 승부가 났는데 첫판은 쿵제의 흑 반 집 승. 둘째 판도 끝내기에서 역전시켜 백 불계승. 구리·후야오위와 함께 중국 삼총사의 한 사람이었던 쿵제는 국제 무대에선 이름값을 못했는데 이번 생애 처음으로 세계대회 결승에 올랐다. 우승상금은 2억원. 준우승은 5000만원. 결승 3번기는 내년 1월 19~22일 서울 삼성화재 본사에서 열릴 예정이다.

부산=박치문 전문기자


하이라이트

○ 황이중 7단 ● 이세돌 9단 준결승 1국

②④로 수순 비튼 이세돌에 당하다

장면 1=쉽게만 마무리하면 백 승은 결정적이다. 그러나 이세돌 같은 강적과 마주 앉아 설렁설렁 마무리한다는 게 과연 쉬운 일인가. 황이중 7단이 백1 붙이자 이세돌 9단은 A에 받지 않고 2, 4로 기어나와 수순을 비튼다. 여기서 황이중이 5를 두지 않고 흑6 자리에 두었으면 A와 B를 맞보기로 하여 무조건 승리했다. 하지만 천금 같은 1승이 너무 무거웠던지 황이중의 손은 5로 향했고 흑은 C로 잇는 대신 6으로 막고 버틴다. 바둑이 이상 기류를 타기 시작했다.

최후의 패착 ① … 반집 패배의 길로

장면 2=당황한 황이중이 백1로 두었는데 이세돌 9단은 이 수를 최후의 패착으로 지목했다. 이 수를 생략하고 그냥 3으로 두었으면 여전히 백 승. 흑은 C의 뒷맛 때문에 함부로 저항할 수 없다. 실전은 백△ 멀쩡한 한 점이 거저 잡히는 등 손해가 커 반 집 패배의 길에 들어서고 만다. 이 같은 황이중의 역전패를 보며 기사들은 “운이 없었다”고 하는 대신 “기량 차가 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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