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속의홍콩>上. 만다린 배워야 출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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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홍콩이'홍콩'으로 불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오는 23일은 중국반환 D-1백일.카운트다운은 시작됐다.이미 일반인들은 중국표준어 익히기에 여념이 없고 홍콩과 외국기업들은 반환 이후의'중국특수'를 겨냥해 벌써 자세를 가다듬고 있다.눈앞에 다가온'1국 2체제'실험현장 홍콩의 오늘을 조명해 본다. [편집자]

요즘 홍콩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지난해 11월 홍콩특별행정구 초대

행정장관으로 선출된 둥젠화(董建華)다.그는 홍콩섬 센트럴에 자리잡은

아시아퍼시픽 파이낸스타워의 행정장관 사무실에서 지도자 수업쌓기에

여념이 없다.특히 지난 12일에

는 현 홍콩정부의 장관급 관리들이 董의 사무실에 출근해 업무협의를

가지기도 했다.

초등학교 학생들도 무척 바쁘다.코앞으로 바짝 다가선 중국으로의

반환에 대비해 표준어인 만다린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영어를 잘해야 영국 식민지하의 고급관료로 출세할 수 있었다면

이제 홍콩특별행정구란 중국의 한 특구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만다린

구사가 필수가 됐다.

4년전 6백60명에 불과했던 만다린 학습참가 공무원이 95~96년도에는

7천여명으로 무려 10배로 늘어났다.

홍콩의 RTHK 라디오 채널7 또한 오는 31일부터 처음으로 하루 12시간씩

만다린 방송을 시작한다.변화의 물결은 도처에 흘러넘쳐 현재 홍콩에서

진행중인 공사판만도 무려 4천개나 된다.

하지만 반환전 홍콩에 돌아와 홍콩특구의 영주권을 취득하려는

회류이민(回流移民)과 매일 1백50명씩 중국대륙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신이민(新移民)을 수용하기 위해선 더 많은 망치질이 필요하다는게

홍콩정부측 주장이다.

특히 역사적인 주권이양식 행사가 열릴 홍콩섬 완차이(灣仔)의

컨벤션센터 확장공사는 행사 한달전인 6월2일까지는 끝내야 하기 때문에

망치질 소리가 더욱 요란하다.“무엇부터 먼저 봐야할지

모르겠어요.홍콩발레단이 공연하는'마지막 황제'

를 보러갈지,아니면 중영(中英)극단의'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더

좋을지 각종 공연과 전람회가 너무 많아 선택하기가 어려울 정도예요.”

홍콩의 한 이동통신업체에 근무하는 데이빗 라우는 최근 홍콩정부가

발표한 약 4천만홍콩달러(약 40억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수십가지의

경축 전람회와 공연회를 살피면서 사뭇 즐거운 비명이다.

입장료가 공짜라 한푼 돈에 직장을 바꾸는 홍콩인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만우절날 1면에 거짓기사를 실을 정도로 무제한에 가까운 언론자유를 누려왔던 홍콩언론들의 반환날짜에 맞춘 몸단속은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다.

“중국으로의 홍콩반환은 D-1백일 시점에서 사실상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홍콩중문대학 궈사오탕(郭少棠)박사의 말처럼

홍콩의 중국화는 이미 반환 훨씬 이전부터 깊숙이 진행된 느낌이다.

[홍콩=유상철 특파원]

<사진설명>

홍콩의 밤풍경

완차이에서 바라본 홍콩의 야경.'1국2체제'라는 거대한 변화의 예고에도

불구하고 번영하는 경제를 반영하듯 밤거리는 화려하고 분주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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