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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의오늘>下. 코리아 밸리 가능한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70년대부터 형성된 실리콘밸리에 최근에야 등장한'실리콘밸리 답지 않은'신종 사업이 하나 있다.사무실 20여개 정도의 건물을 지어 벤처기업들에 임대하고 통신.편의시설등도 함께 제공하는 클러스터(cluster) 사업이다.

벤처기업들이 한데 모여 둥지를 틀 수 있는 공간을 마련,이렇다할 기반 시설도 없이'창고'에서 시작된 애플 신화의'비효율성'(?)을 극복해보자는 이 사업도 물론 어느 민간기업이 돈 벌자고 낸 아이디어다.

지금까지 3~4곳의 클러스터가 생겨 한참 사업 성공 여부를 실험중인데 그러자 시.주정부와 대학등도 관심을 갖기 시작해 공공부문이 클러스터등을 통해 벤처기업을 도와주기 위한 방안들을 논의하고 있다고 샌호제이주립대학의 윤석중교수는 전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천시가 추진 중인'미디어 밸리'는 처음부터 지방정부가 나선 대규모 클러스터인 셈이다.이와 관련,올들어 최기선 인천시장 일행을 비롯해 한국에서의 실리콘밸리 견학단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미디어밸리 계획을 보는 이곳의 시각들은 사뭇 회의적이다.“20여명이 4~5일 일정으로 와서 단체로 오찬.만찬하고 인텔.퀀텀등 이름 난 회사 쇼룸 정도를 기껏 둘러보고 가는데,그래서야 어떻게 실리콘밸리가 돌아가는 속을 알 수가 있겠소.”(현지 상공인 P씨)

“한국 모 대기업의 이곳 현지법인서 93년부터 2년간 일한 적이 있는데 그런 식으론 안된다.의사 결정이 늦어 이곳의 빠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ESS테크놀로지 후버 첸 부사장)

“한국 대기업의 현지 법인들은 오너가 아니니까 리스크를 지지 않고 리스크를 져서 성공해도 승진이나 직업 유지가 고작이다.리스크를 져 성공한다는 것은 이제 막 시작하는 벤처기업에 초기단계(startup)부터 투자,비교적 싼 값에 첨단기술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기업과 이야기하려면 의사결정권이 없는 중간간부가 나온다.반면 대만은 주로 자영업자들이 리스크를 안고 뛴다.”(태희남 벤처법률그룹 변호사)

미국적 토양(土壤)위에서 자생(自生)한 실리콘밸리를 한국식 산업단지위에 이식하려면,터를 닦고 기반시설을 갖추는 하드웨어보다 첨단산업이 발흥하는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

또 주식시장이 실리콘밸리의 주요 기반시설이 된 바탕에는 스톡옵션이란 제도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기업관(企業觀),믿을 수 있는 외부 감사와 정보의 공개,주가에 울고 웃는 경영자와 투자자등의 미국식 시스템이 있다.

앰벡스 벤처그룹의 이종문 회장은 실리콘밸리 성공의 으뜸가는 요인으로 미국식 다원주의와 교육방식을 꼽는다.

“비록 미국의 주도 세력이 WASP(백인.앵글로색슨.개신교)이라지만 와습의 와 자도 없는 데가 여기요.수많은 인종의 사람들을 접해보면 그중 유대인이 가장 뛰어나고 다음으로 인도.베트남.중국.일본.한국인의 순인 것 같습디다.한국.일본인들은 논리의 앨거리즘에 약한데 동질적인 가치기준과 획일적인 교육방식을 고치지 않으면 소프트웨어 개발은 어려워요.”

실리콘밸리가 있기까지 미국 정부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80년대 중반 이후 이곳 실리콘밸리도 도산이 속출하는 심각한 불황을 겪었다.당시 일본 기업등을 열심히 벤치마킹하던 미국은 더 이상 자동차.조선등으로는 힘들다고 판단,첨단 소프트웨어산업등에 대한 세제지원과 함께 민관이 힘을 합쳐 큰 승부수를 걸었다.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려던 일본에 맞서 디지털 방식으로의 전환에 총력을 기울였고 결과는 미국의 대승리였다.

그러나“왜 실리콘밸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역시 정부가 나서기 오래 전부터 짜여지기 시작한 자원과 사람의 네트워크에서 찾아야 한다. [샌호제이=김수길 특파원]

<사진설명>

인천시가 송도에 추진중인 미디어밸리 개발계획도.그러나 대기업들이

투자를 꺼리고 관련업체들의 관심도 낮아'한국판 실리콘밸리'로 커나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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