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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꿋꿋한 생명력 보며 시련 이겨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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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동백꽃에 진리가 있다고 믿었지요. 그저 동백꽃처럼 꿋꿋하게 살다 가면 그만인 것을….”

양언보(65·사진)씨는 이렇게 동백꽃 얘기를 꺼냈다. 그는 서귀포시 안덕면 상창리 17만2000㎡ 부지에 세계 500여 종의 동백을 모아 ‘카멜리아힐’(Camellia Hill·동백언덕)이라는 식물 테마공원을 최근 열었다. 제주도와 남부해안 등 따뜻한 지역에만 자생하는 동백만으로 꾸민 테마 공원은 드물다.

카멜리아힐의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20여 년 전인 1985년 동백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다. 서귀포 안덕면이 고향인 그는 대학을 마치고 20여 년간 고구마 전분공장, 건설·유통·무역업 등 여러 가지 사업을 해왔다.

“그럭저럭 돈을 벌어 살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산다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는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어린 시절 주변에서 늘 대하던 동백나무에 달린 꽃을 바라보며 마음의 번민을 털어냈다. 눈 속에서 피어나고 한 순간 눈 위에 떨어져도 오랜 시간 시들지 않는 동백 꽃잎은 그에게 ‘시련을 이겨내는 삶의 좌표’였다.

동백의 아름다움과 상징성에 반한 그는 자신이 일구던 1만㎡의 과수원에서 감귤 나무를 베어내고 동백나무 묘목을 심었다. ‘동백의 세상’으로 들어서자 그에겐 “세상의 동백을 한 곳에 모아놓고 싶다”라는 목표가 생겼다. 그래서 틈만 나면 국내 각 지역의 동백 수집에 나섰다. 15년 전부터는 사업도 아예 조경업으로 바꾸었다. 급기야 10년 전인 98년부터는 사업도 접고 세계 각 지역을 수소문하며 동백묘목 찾기에 들어갔다. ‘세상의 동백을 다 모아둔 공원’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동백을 모으면서 들인 돈과 정력도 만만찮다. 갖고 있던 부동산을 처분해 다시 땅을 사고, 나무를 들여와 테마공원을 꾸미는 데 180억원이 들어갔다. 7~8년 전 제주의 도로포장사업 현장에서 24그루의 동백을 4000만원을 들여 사오기도 했다. 10년 전엔 서귀포 남원읍 신례리 한 가옥을 지나다 수령이 250년이나 되는 10m 높이의 거목을 발견하고 기쁨에 겨워 눈물도 흘렸다. 현재 그의 테마공원에 자리한 최고령 동백이 바로 이 나무다.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희귀 품종을 국내에 반입하는 과정에서 혹시나 말라 죽을까봐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검역 뒤에도 묘목의 흙을 털어내고 1주일 이상 대기해야 하는 규정 때문에 “자식 같은 동백이 행여나 상할까 속이 탔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그동안 스스로 두 종의 동백 차를 직접 개발했다. 머릿기름으로만 쓰던 동백기름을 식용유로 만들어 4년 전엔 특허까지 받았다. 양 대표는 “공원에서 수익이 나면 재단을 만들어 사회에 돌려주는 방안을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글=양성철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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