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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재계새별>3.신원그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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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믿음을 으뜸으로 하는 기업.”

국내 대표적 여성의류업체인 신원이 내걸고 있는 슬로건이다.독실한 기독교신자인 박성철(朴成喆)회장이 이끄는 신원그룹은 일요일이면 본사는 물론 전국 직영영업장이 모두 문닫고 영업을 하지않는다.朴회장은 창업이래 이같은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朴회장은 이에 대해“물건만 좋으면 고객들이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다 사간다.1주일에 한번 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지만,일의 능률을 올린다는 차원에서도 필요한 것이다.이를 어기면서까지 돈을 벌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73년 가내공장 시작

90년대 들어 여성의류의 내수판매가 급성장하며 알려지기 시작한 신원그룹의 첫 출발은 朴회장이 73년 인수한 신원통상.편직기 12대와 종업원 4명에 불과한 가내공업 수준의 섬유업체였다.

89년 직원 2백50명으로 수출실적 1억달러를 기록하며 섬유업계의 무서운 아이로 떠올랐으며,지금은 12개 계열사에 매출규모 1조2천억원(96년)의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이같은 고속성장의 바탕이 된 것은 무엇보다도 거래선과의 신용이었다.

수출 초창기인 75년 봄.영국에 스웨터 5백장을 납품한 朴회장은 이가운데 2장이 불량품이라는 바이어의'의례적인'국제전화를 받았다.朴회장은 다음날 곧바로 항공편으로 스웨터 2장을 보냈다.이 사실이 외국업체들에 알려지면서 주문이 쇄도

했다.신원은 지금까지도 25년전의 거래선들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다.

수출로 정상궤도에 오른 신원은 90년 내수 패션업계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었다.당초 자체 브랜드를 개발해 수출하려던 계획이었지만 “당신들 나라에서도 안 알려진 브랜드를 어떻게 수출하느냐”는 바이어의 조언에 따라 내수시장에 진출했다.숙

녀복 브랜드인 '베스띠벨리'와'씨'로 출발해 지금은 9개의 자체브랜드와 2개의 수입브랜드를 갖고 있다.

신원이 내수시장에 진출하면서 가장 중요시한 전략은'빠른 의사결정'이다.유행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유행을 리드해야 하는 패션에서'시간이 돈'이라는 생각 때문이다.디자이너에서 최고경영자까지의 결재단계를 3회이상 넘지않게 하고 필요하다면

'선진행 후보고'도 인정하고 있다.

신원그룹은 83년과 88년에 건설회사인 신원종합개발과 골프장 운영업체인 신원월드를 각각 설립하며 사업분야를 넓히기 시작했다.

95년'사업다각화 원년'을 선포하고

신원유통.신원창투.광명전기.신원기획등 4개 계열사를 추가하며

유통.금융.전자산업에 진출했다.지난해엔 21세기에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신원JMC와 신원정보시스템.신원인더스트리.신원텔레컴등 4개 회사

를 설립하며 화학.정보통신.방송기기 제작에까지 참여했다.

朴회장의 경영철학이기도 한 '믿음'은 크게 두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기업경영을

한다는 것이다.또 하나는 고객들에 대한 믿음이다.고객이 믿고 찾을 수

있고 최대한의 만족을 줄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25년이라는 짧은 기업

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신원이 있기까지는 이같은 기업문화가 큰

영향을 끼쳤다.

朴회장은 직원들에게“기업은 회사와 소비자들간의 믿음을 실천해야

한다.노사관계 역시 서로를 믿을때 원만히 해결할 수 있다”고 수시로

말한다.

朴회장이 이처럼 믿음을 강조하는 것은 그의 인생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1940년 전남 신안에서 태어난 朴회장은 6.25직전 부친을 잃고 전쟁을

겪으며 집안이 파산해 초등학교 3년을 중퇴해야 했다.

朴회장은 돈 없이도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조건

집을 나서 신안군의 작은섬 고하도에 있는 고아원'중앙감화원'을

찾았다.여기서 성실히 생활한 끝에 인근 마을의 초등학교에 6학년으로

편입하며 배움의 꿈을 이뤘다.

고교졸업때 상으로 받은 영어사전을 팔아 차비를 마련,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닥치는 대로 잡일을 해 대학을 다녔지만 1년6개월만에 등록금이

없어 지금은 없어진 모 경제신문사 교열기자로 입사,1년뒤엔 경제부로

자리를 옮겼다.

기자생활 8년만에 朴회장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처가에서

운영하던 스웨터공장이 경영난을 겪자 朴회장에게“한번 해보라”고

제의한 것.73년 기자생활을 그만두고'신원통상'이란 회사를 설립,사업가의

길에 뛰어들었다.

사업초창기 기계밑에서 잠을 자가며 공장을 돌렸고 신앙생활을 멀리한채

사업상의 이유로 술과 담배까지 가까이했던 朴회장은 과로로 쓰러지게

된다.당시 朴회장은'건강이 회복된다면 일생동안 1백개의 교회를

짓고,1년에 1백명씩 전도하고,신

학생 1백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겠다'는 서원기도를 했다.그는 지금도 이

약속을 지켜나가고 있다.

신원그룹은 매주 금요일 오전7시 조찬을 겸한 사장단회의를 개최한다.

朴회장의 경영스타일은 위임형에 가깝다.신규투자등 굵직한 업무와

계열사 사장급 인사만 직접 챙긴다.임원 인사는 계열사 사장들의 의견을

거의 수용한다.그룹의 실무는 김상윤(金相允)부회장이 총괄한다.그러나

직원들과는 항상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신원그룹 직원들은 최소한 한달에 한번은 朴회장을 직접 볼 수 있다고

한다.朴회장이 수시로 사무실과 영업장을 방문하기 때문이다.필요하면

일선 직원과도 업무를 의논한다.

30대 그룹 진입 목표

이달초 마포 본사의 사무실 재배치 때도 朴회장이 직접 내려와“6층

조명이 어둡다.형광등을 추가하고 벽도 밝은 색으로 칠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金부회장은 경북대 국문학과를 나와 교직생활을 하다 78년 업계에 발을

디뎠다.신원에는 80년 입사했다.

신원을 대표하는 전문경영인으로는 백갑종(白甲鍾)기조실장(사장)과

김주동(金柱東) ㈜신원 사장이 있다.

白사장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70년부터 8년간 경제기획원에서 관료생활을

했다.목포고 선배이기도 한 朴회장의 권유로 지난해 3월 신원에

합류,사업다각화와 기획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金사장은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나온 엔지니어 출신으로 무역회사와

통역회사를 거친 국제통이다.지난해 9월 스카우트됐다.

신원그룹은 최근 계열사수를 많이 늘렸다.앞으로 계열사인 광명전기를

통해 중전기사업을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공업에까지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朴회장은“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류가 존재하는한 계속될 기본

욕구이기 때문에 섬유산업은 결코 사양사업이 아니다”며“사업다각화는

섬유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신원그룹은 이를위해 2000년대를 향해 신원과 협력업체,소비자가 같이

발전하자는 취지의'BOTH 2000(Build-up On Trust&Honesty for

2000)'운동을 지난해부터 전개하고 있다.

올해 그룹의 매출목표는 1조6천4백억원이며,21세기초까지 국내

30대그룹에 진입한다는 구상이다. 〈이수호 기자〉

(다음은 애경그룹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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