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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고성군의 산불로 죽왕면 삼포1리 38가구를 비롯하여 인정리.오호리.구성리등 7개지역 가옥 70채가 불에 타고 53세대 1백62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고 하였다.그리고 축사 32채와 창고 70개가 전소되었고,한우 27마리,염소.개.

토끼 40여마리,닭.칠면조 2백20여마리가 불에 타 죽었다고 하였다.

“저런 불은 내가 태어나서 생전 처음 보네요.그나마 불에 타 죽은 사람은 아직 없어서 다행이에요.이 건물에 불이 나면 난 어디로 피하죠?”

여자가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박고 가볍게 몸을 떨었다.

“여기가 옥상인데 어디로 피해요? 다른 사람들도 옥상으로 피해 올라올 텐데.”

구환이 조금 열려 있는 방문 너머로 옥상의 꺼칠꺼칠한 시멘트 바닥과 봄기운에 푹 젖어 노곤해 보이는 하늘을 흘끗 쳐다보았다.

“하긴 그렇네요.내가 가장 안전한 곳에 살고 있네요.근데 말이죠,옥상에까지 불길이 올라오면 어떡하죠? 소방서 구조대도 늦게 오고.”

“그때는 내가 오늘 설치해준 유선방송 동축선을 타고 싸악 내려오면 될 거예요.동축선을 여기 침대 다리 같은 데 묶어놓고 말이에요.”

구환이 동축선을 두 손으로 잡고 내려오는 시늉을 해보이자 여자가 푸우,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재미있는 아저씨 같애.”

“같애라니? 난 재미뿐만 아니라 재재미도 있는 사람이라구.”

“재재미요? 후후.재재미는 처음 듣는 말인데요.”

재미 제곱이란 뜻이지.아가씨,이제 유선방송 연결되었으니 심심할 때 재재미 보라구.달마다 시청료 3천원씩 꼬박꼬박 잘 내고.3천원이면 공짜지 뭐.비디오 하나 빌려 보는데도 천원은 줘야 하는데 말이야.”

“그 대신 가입비를 3만원이나 받아 가잖아요.아참,에스 비 에스(SBS)도 잘 나오죠? 여긴 난시청 지역이라 안테나 연결해도 에스 비 에스는 잘 안 나오더라구요.에스 비 에스 코미디 프로가 재미있다는데.”

“에스 비 에스뿐만 아니라 미군 방송도 이제는 잘 나올 거야.혹시 고장나면 연락하고.”

“고장나면 아저씨가 또 달려올 거예요? 그때도 아저씨가 왔으면 좋겠다.그러니 아저씨 명함 한장 줘요.특별히 아저씨 찾아서 연락해야지.어디까지나 설치한 사람이 애프터서비스도 끝까지 책임을 져야죠,그쵸?”

그러면서 여자가 새끼손가락을 불쑥 내밀었다.약속의 표시를 하라는 동작이었지만,구환은 그 새끼손가락에 손가락을 걸면 동축선이 안테나 단자판에 연결되듯 두 사람의 운명이 덜컥 유선으로 이어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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