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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땀흘린 표충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만유인력의 원리를 발견한 아이작 뉴턴은 독실한 기독교 신봉자였으나 그가 따른 교리(敎理)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한'에어리어니즘(Arianism)'이었다.뉴턴 뿐만 아니라 신도이기도 한 많은 과학자들이 비슷한 입장이었다.종

교적 신비주의와는 상치되는 과학적 견해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속한 교파와 교리의 오류들이 과학적인 논증을 통해 증명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의도적으로 침묵하는 등 교회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종교적 계

시는 원칙적으로 과학의 영역을 넘어서 있는 경험'이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과학자들은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으로서 과학을 제외한 어떤 것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그들은 종교적 신비주의의 많은 부분이 왜곡됐거나 조작됐다고 믿는다.가령 90년대초 미국과 이스라엘의 두 학자가 성서의 출애급기

에 나오는'모세의 기적'을 과학적으로 규명한 것도 그중의 하나다.그들은'기적'의 장소가 수에즈만이라는 전제아래서 바람 등 자연조건에 대한 물리.수학적 분석 결과 수면의 높이나 퇴조 정도가 당시의 기적을 낳을만한 충분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장담했다.

그래도 종교적 이적(異蹟)이라 불릴만한 현상은 전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연출되고 있다.유고슬라비아와 필리핀 등지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고 몇차례 소동을 빚었고,미국 시카고의 알바니아 정교회에 있는 성모 마리아 초상화와 버지니

아의 한 성당에 있는 성모 마리아상이 이따금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이를 확인하려는 신도들이 장사진을 이루기도 했다.'성모 마리아상의 눈물'은 10년전 우리나라 나주(羅州)에서도 화제가 됐었다.

물론 이같은'이적'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적은 없다.문제는 뭇사람들이 그같은 현상을 굳이 현실과 연계시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는데 있다.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마다'땀'을 흘린다는 경남 밀양의 홍제사 표충비도 마찬가지다.과학자

들은 이슬로 맺혔다가 물이 돼 내뿜는 일종의 결로(結露)현상으로 보지만 갑오농민전쟁에서부터 10.26에 이르기까지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렸다 해서'이번엔 왜?'라며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양이다.그것도 나라가 두루 편치 않은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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