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기에는 너무 빨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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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호 03면

괴짜는 괴상한 사람이다. 기인(奇人)은 성질이나 언행이 별난 이를 가리킨다. 이인(異人)은 그 뜻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 보통 사람과는 달리 재주가 신통하고 뛰어난 인간을 말한다. 범상한 삶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통하는 괴짜와 기인과 이인은 사회를 뻥 뚫어주는 활력소라 할 수 있다.

울림과 떨림 -한 주를 시작하는 작은 말

일간지의 도쿄 특파원을 지내며 일본통이 된 조양욱(56)씨는 일본문화 연구자의 시각에서 스무 명의 일본 괴짜를 불러 모았다. ‘어려운 시절을 어찌 헤쳐 나갈까’ 걱정에 절어 시대의 지혜를 묻는 범부에게 통념을 거부한 이들의 거침없는 인생 경영술을 들려준다.

“내가 치는 괴짜는 사심(私心)을 훌러덩 벗어던진 채 아름다운 일탈을 행하는 이들이다. 미답(未踏)의 영역에 서슴없이 덤벼들기를 좋아한다. 외곬으로 한 우물 파기도 즐긴다. ”

올 노벨상의 과학 분야를 일본인이 휩쓸다시피 한 바탕에 이런 괴짜들의 힘이 있었다고 조씨는 짐작한다. 시사 잡지의 명 편집자로 이름을 날리며 일본 국유철도의 모든 노선을 답파한 뒤 ‘철도 작가’가 된 미야와키 슌조(1926~2003), 도쿄대 법학부를 나와 최고 엘리트 코스의 영예를 집어던지고 일본 고유 품종 벚나무 연구에 평생을 바친 ‘벚나무 지킴이’ 사사베 신타로(1887~1978), 과학 전문잡지를 만들며 화성(火星) 땅을 팔아먹은 일본판 봉이 김선달인 하라다 미쓰오(1890~1977) 등 파격으로 우리 뒤통수를 치는 괴짜의 삶이 소설보다 더 재미있다.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한 뒤 브루크너 전문가로 세계적인 지휘자가 된 아사히나 다카시(1908~2001)는 아흔 살에도 지휘봉을 잡았던 정념의 기인이었다. 아사히나는 숨을 거두기 직전 “은퇴하기에는 너무 빨라!”라고 중얼거렸고, 이 한마디가 유언이 되었다. 불굴의 혼은 죽음도 은퇴시킬 수 없는 절대 정신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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