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여행사 1000개 문 닫아, 그린투어로 활로 뚫어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92호 24면

국내 최대 여행사 하나투어의 박상환(51·사진) 회장은 요즘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졌다고 했다. 불황의 여파로 해외 여행 수요가 급감하는 마당에 환율까지 치솟아 외환위기의 악몽이 재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11월 출국자 수가 20% 줄었다지만 해외 여행객만 따지면 절반은 줄어든 것 같다”며 “엔화 환율 급등으로 일본행 여행객이 60%가량 준 데다 위안화도 강세여서 중국행 여행객도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업계 1위 하나투어 박상환 회장의 불황 타개책

한국관광협회중앙회에 따르면 연초 1만681개였던 여행사가 지난달 말엔 9695개로 1000곳 가까이 감소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여행사도 대부분 감원이나 감봉에 나서는 등 축소경영에 들어간 상태다. 하지만 박 회장은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분명히 돌파구는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아웃바운드(내국인을 해외 여행에 내보내는 것) 위주의 사업구조 탈피를 서두르고 있다. 현재 6% 수준인 인바운드(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 사업 비중을 2015년까지 5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달 열흘 일정으로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미국엔 한국 교포가 운영하는 여행사가 430여 개나 있지만 한국 관광상품을 파는 곳은 전무한 실정이다. 한국 관광상품만으론 수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가운데에 위치해 중국이나 일본과 연계한 관광상품을 파는 데 유리한 조건이다. 미 교포 여행사와 함께 현지 판매 네트워크를 구축해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관광상품 판매에 나설 것이다.”

박 회장은 동남아 관광상품만큼은 하나투어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승산이 있다고 본다. 우선 교포를 대상으로 영업한 뒤 아시아계 이민자까지 고객으로 끌어들인다는 구상이다. 사업에 참여하는 교포 사업가에겐 미주법인 하나투어USA(자본금 500만 달러) 지분의 절반을 영업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로 나눠주기로 했다. 이와 함께 2005년 설립한 일본 현지법인 ‘하나투어 저팬’에도 인바운드 확대 미션을 줬다고 했다.

박 회장은 국내에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무엇보다 국가적 차원에서 관광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솔직히 한국의 관광 인프라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떨어진다. 단적인 예로 경복궁은 중국 자금성과 비교가 안 된다. 경제대국 일본에 비해선 안전성이 떨어진다. 지금부터라도 국가적으로 획기적인 관광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디즈니랜드 같은 관광 명품은 땅을 무상으로 임대해 주더라도 유치해야 한다. 또 두바이처럼 국가적인 차원에서 ‘미러클 프로젝트’를 자꾸 만들어야 한다. 두바이가 1조원을 들여 만든 실내 스키장은 연간 수입이 500억원 수준이다. 투자에 대한 이자는커녕 유지비도 안 나온다. 하지만 이 스키장을 찾아온 관광객이 교통·숙박·쇼핑으로 쓰는 돈까지 감안하면 남는 장사가 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반도 대운하는 해볼 만한 사업이다. 한·중·일 15억 인구를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적인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
그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실업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관광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했다.

“21세기엔 IT(정보기술)·BT(생명기술)·NT(나노기술)가 먹여 살린다고 하지만 이런 산업은 고용 창출에 한계가 있다”며 “고용 창출 효과가 큰 관광사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진국일수록 관광사업 육성에 적극적”이라며 “농촌만 해도 농작물 재배만으론 먹고사는 한계가 뚜렷한 만큼 ‘그린 투어리즘’ 연계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 한국은행이 2002년 발표한 ‘관광 지출의 경제적 파급효과’ 자료에 따르면 관광산업의 취업유발계수(10억원 지출당 유발되는 취업자 수)는 52.1명으로 전체 최종 수요의 취업유발계수(25.4명)의 두 배가 넘는 것으로 분석됐다.

박 회장은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인으로 알려져 있다. 1997년 11월 외환위기가 닥치자 모든 여행업계가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했지만 하나투어는 꿋꿋이 버텨냈다. 덕분에 이듬해 해외여행 수요가 되살아나자 하나투어는 독주하다시피 하며 여행업계 1위에 올라섰다.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게 사람이다. 법인도 하나의 생명체다. 인위적 감원은 법인의 생명을 스스로 단축하는 것이다. 어렵다고 직원에게 모든 고통을 전가해선 안 된다. 매주 한 번 사내 인터넷 게시판에 들어가 열린 소리를 듣는다. 경쟁사들이 감봉과 무급휴직을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직원들 사이에 위기감이 퍼져 있는 것 같다. 월례회의 때 ‘그럴 일 없다’고 전했다. 최악의 경우가 닥치더라도 감원·감봉보다 ‘잡 셰어링’ 제도를 활용할 계획이다. 종업원 동의 아래 주4일 근무제를 실시할 생각이다.”

하나투어는 2005년 잡 셰어링 제도를 도입했다. 정년을 65세까지 연장하는 대신 50~55세가 되면 주4일 근무하면서 기존 연봉의 80%, 55~60세는 주3일 근무에 60%, 60~65세는 주2일 근무에 40%만 받는 제도다. 현재 박 회장을 비롯해 여섯 명이 이 제도의 대상자다.

그는 외환위기 당시 달러당 2000원대까지 갔던 환율이 1200원대로 안정되는 데 2년 넘게 걸린 반면, 이번엔 길게 봐도 내년 상반기 이전엔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늦어도 내년 하반기엔 해외여행 수요가 회복될 것이란 얘기다.

하나투어는 2010년 ‘글로벌 톱10 여행사’를 꿈꾸고 있다. 박 회장은 인바운드를 강화해 나가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하나투어는 2000년 11월 국내 여행사로는 처음으로 상장(코스닥)했으며, 2006년 11월엔 영국 런던증시에도 상장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