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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2008] 유명 해외 음악가 러시…명성에 갈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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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유로프스키와 런던 필하모닉의 연주는 인상적인 에너지로 최고의 공연에 뽑혔다. [크레디아 제공]


‘명불허전’이었다. 현역 연주자들은 2008년 최고의 음악회로 굵직한 외국 음악가들의 내한을 주로 꼽았다. 베를린·런던 필하모닉 등 대형 공연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안드라스 쉬프, 안젤라 휴이트 등 ‘별’들의 공연에도 찬사가 이어졌다. 다양한 연주 경험과 연주자 특유의 감성을 바탕으로 해석한, ‘2008년의 감동’을 소개한다. 

김호정 기자

외국 작곡가가 끌어낸 국악기 가능성

‘연주자들이 뽑은 올해 최고의 연주자’인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右)와 안젤라 휴이트.

◆황병기(72·가야금 연주자)=나는 10월 26일 금호아트홀에서 한국의 울타리를 넘는 국악을 발견했다. 한국현대음악앙상블(CMEK)의 무대에서였다. CMEK는 가야금 연주자 이지영이 대금·피리 등 한국 악기에 기타·첼로 등 서양 악기를 더해 만든 실내악단이다. 퓨전 음악이라고 하면 흔히 서양의 익숙한 선율을 한국의 악기로 연주하는 것을 생각한다. 하지만 CMEK는 중국 태생의 세계적인 작곡가 추웬충, 독일의 클라우스 후버 등 외국인 5명에게 국악 작곡을 맡겼다. 국악기를 낯설어 하는 이 작곡가들을 위해 워크숍을 열고, 면담과 설명을 계속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국악기의 능력이 최고로 발휘된 음악이 무대에 올랐다. 올해의 가장 진지하고 의미있는 공연으로 기억한다.


베를린 필하모닉 리허설 기억에 생생

◆데니스 김(33·서울시향 악장)=모든 단원이 수석처럼 연습하는 모습을 볼 기회가 소중했다. 11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의 베를린 필하모닉의 공개 리허설에서다.

이날 저녁에는 내가 연주하는 공연이 마침 겹쳐 보지 못했다. 대신 오전에 열린 리허설을 지켜봤다. 단원 하나하나가 실력과 열의를 동시에 가지고 연주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나 자신이 오케스트라 플레이어로서 여러 관현악단의 연주마다 단원들의 자세와 태도를 중요하게 지켜본다. ‘세계 제일’이라는 명성을 확인시킨 베를린필이 소외계층 청소년을 리허설에 초대한 것도 올해 음악계의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젊은 지휘자’ 세계 음악계 키워드 확인

◆정치용(51·지휘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3월 1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런던 필하모닉을 올해의 공연을 꼽는 이유는 ‘젊은 지휘자’라는 세계 음악계의 키워드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36)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비창’은 인상적이었다. 물론 음악적으로는 아직 완전히 여물지 않은 연주였다. 하지만 지휘자의 젊음과 활기, 음악적인 분위기는 그 어떤 무대보다 최고였다.

청중이 원하는 차세대 지휘자가 어떤 모습인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잘생긴 얼굴과 카리스마 넘치는 움직임, 확신 있는 음악에 객석은 열광했다.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가 20~30대의 젊은 지휘자를 과감히 기용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그의 행보를 한국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람이 있었다.


‘거장’쉬프의 과거·현재 모습 보여줘

◆김주영(38·피아니스트)=금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인 안드라스 쉬프는 첫 내한인 이번 공연에서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돌아갔다. 2월 24일 서울 예술의전당의 독주회에서였다.

프로그램부터 범상치 않았다. 자신의 오래된 주특기인 바흐, 최근 전곡 연주에 매진하고 있는 베토벤으로 꾸몄다. 거장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볼 수 있었던 셈이다. 그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쉬프는 브람스·리스트 등 낭만시대 이후의 음악은 잘 연주하지 않는다. 화려한 기교와 큰 음량 등으로 실력을 과시하고 싶은 유혹을 참아내며 성실히 노력하는 피아니스트다.

전문분야에서 자신의 색깔을 잘 만들어가는, 존경과 사랑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쉬프의 공연은 올해의 음악회 중 가장 큰 수확이었다.


피아니스트 휴이트·허프 ‘알맹이 연주’ 선사

◆양성원(41·첼리스트)=올해 최고의 공연으로 하나를 꼽기가 힘들다. 같은 장소(LG 아트센터)에서 열린 안젤라 휴이트(4월 13일), 스티븐 허프(6월 1일) 독주회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유난히 피아노 공연이 좋았던 한 해다. 각각 캐나다·영국의 피아니스트인 이들은 정확한 컨셉트를 가지고 독주회를 열었다. 휴이트는 피아노의 ‘구약 성서’라 불리는 바흐의 평균율 전곡(48곡)을, 허프는 8명 작곡가의 변주곡과 왈츠를 모았다.

두 연주자는 공통적으로, 무대에서 내면을 드러냈다. 기술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은 연주자는 수두룩하지만 이처럼 알맹이를 가지고 있는 공연은 만나기 힘들다. 금세기의 실력파 피아니스트 두 명의 명성이 실력보다 과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했다.


노장 성악가 박인수·엄정행·신영조의 열정

◆류정필(40·국립오페라 전속 테너)=한가을 밤에 노장의 끝나지 않는 전성기가 펼쳐졌다. 10월 19·21일 세종문화회관 ‘MBC 가을맞이 가곡의 밤’이 그 무대였다.

테너 박인수(70),엄정행(65),신영조(65)씨가 한 무대에 섰다. 모두가 한국의 가곡을 나눠 불렀다. 객석의 열기는 파바로티·도밍고·카레라스의 ‘쓰리 테너’에 못지 않았다. 전성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소리, 감성이 배어나왔기 때문이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재기한 신영조 씨를 비롯, 음악과 함께 평생을 보낸 성악가들의 열정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우리 말로 된 가곡은 좀 더 가깝게 다가갔다. 이 뜨거운 감정으로 음악을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새기게 한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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