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지방에서는

보건소를 '웰빙 센터'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예전엔 보릿고개 넘기기가 힘겹다는 말을 했다.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던 때도 있었다. 배 나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의 얘기다.

그러나 이젠 비만을 염려하고 건강을 최우선시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건강에 좋다는 식품, 웰빙(well-being)산업, 허브산업 등등의 낱말들이 난무한다.

'짱 하는 소리' '쨍 하는 소리' '짱짱하다'라는 표현같이 쌍지읒의 된소리는 발음도 어렵지만 내용 면에서도 만만치가 않은 모양이다. 모양새를 내는 '짜임새'작업이 쉽지 않듯 몸짱.얼짱.맘짱을 만드는 일도 아주 힘든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쉬운 듯한 몸짱도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일명 몸짱 아줌마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주부는 몸을 디자인하는 방법으로 유산소 운동과 무게운동, 그리고 강한 의지 등 3박자가 어우러져야 한다고 했던가.

여하튼 그 어려운 몸짱 만들기 바람이 요즘은 대도시뿐 아니라 전국 각 지역에서도 세차게 불고 있다. 지방에서도 웰빙 바람이 불면서 '그대 성공을 꿈꾸는가, 화려한 변신을 소망하는가' 등이 적힌 현수막이 곳곳에 나붙고 있다.

그중에서도 전주.익산.김제 지역의 경우엔 아예 지방 보건소들이 앞장서 몸짱 만들기 열풍을 불어넣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전주보건소는 언제부터인가 '뱃살빼기 센터'를 운영해 인기를 끌고 있다. 보건소를 찾는 주민에게 주변 공원의 잘 갖추어진 운동시설과 80여개의 헬스클럽을 소개하면서 운동을 권장한다.

'수명은 허리둘레와 비례하고 복부 비만은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입니다' '중년의 뱃살은 고혈압.고지혈증.당뇨병.뇌졸중.심근경색 등 각종 성인병을 유발하는 주범' 등등…. 뱃살빼기 센터를 방문하면 온통 뱃살의 위험을 강조하는 글들뿐이다.

또 주민을 대상으로 연 2회의 뱃살빼기 대회까지 실시하고 있다. 10명을 한 조로 팀별 신청을 받은 뒤 개인별.팀별로 3개월 동안 뱃살을 얼마나 뺐는지 보며 포상하는 것이다. 출전자에게 생활수칙과 체질량지수(BMI) 측정표를 제공하고 '뱃살빼기 십계명'을 문자 메시지로 보내거나 전화상담 등을 하면서 용기를 북돋우는 등 보건소 측의 노력은 가히 프로급이다.

김제보건소의 회원제 운동 치료 프로그램 역시 인기다. 김제보건소의 프로그램은 운동요법을 모른 채 피트니스클럽을 찾는 주민에게 올바른 운동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익산보건소에서는 4억5000만원을 들여 '운동 영양 의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환자를 관리.치료하는 목적으로 시작됐다.

운동장애가 있는 주민 중 60여명씩을 대상으로 6개월 코스로 운영되고 있는데 효과가 알려지자 최근엔 500여명의 환자가 몰렸다고 한다. 저렴한 의료수가와 회비로 예약 대기자가 계속 밀리는 반면 하루에 7명 이상 측정할 수 없어 인력 및 시설 확장이 요구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건강 증진을 위한 보건소들의 노력은 지역 주민의 많은 호응을 받으면서 성황을 이루고 있다.

보건소의 기능 퇴화에 대한 논의는 이미 오래된 일이다. 지방 보건소의 기능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많이 있었다.

치료는 1~3차 검진기관에 맡기고 지방 보건소는 치료 목적보다는 방문 보건사업, 재활운동사업, 어르신 건강관리 등 찾아가는 의료행위를 주업무로 해야 한다고 오래 전부터 주장되어 왔다. 호남지방 보건소들의 변신은 이런 점에서 앞서가는 의료행정이 아닐 수 없다.

지역 보건소를 '21세기 웰빙 센터'로-. 전국의 모든 보건소가 주민의 건강과 아름다운 삶을 관리해 주는 새 의료기관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국중하 우신산업㈜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