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뷰>KBS '일요스페셜-종묘너구리' 공들인 역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2일 밤8시 KBS-1TV 일요스페셜은 모처럼 진객을 안방에 '모셔'왔다.'서울 한복판 종묘에 너구리 일가가 살고 있다'는 소문을 생생한 화면으로 입증했기 때문이다.

수백만 인파와 차량이 웅성거리는'인공'의 한 가운데에 어떻게 '야성(野性)'이 살아 남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호기심과 반가움을 잔뜩 품고 수상기 앞에 앉은 시청자들의 기대를 제작진은 저버리지 않았다.

종묘 너구리라는 소재의 신선함을 뛰어넘어 촬영과 관련 취재,제작진의 노력등 모든 면에서'일요스페셜'의 명성에 걸맞은 역작이었다.

10개월간 수십시간의 잠복 끝에 너구리에 접근한 노력의 흔적이 역력했고 좁은 하수도를 비집고 들어가 촬영하는 성의까지 다했다.

새끼낳기에서부터 어미로부터 생존법을 배우는 과정,독립해 이듬해에 짝짓기하는데 이르기까지 한 너구리일가의 가족사를 설정한 것은 친밀감을 높여주는 돋보이는 구성이었다.

종묘 너구리가 북한산→삼청공원→창덕궁→창경궁→종묘로 이어지는 자연수림대를 통해 이동하면서 도로가 갈라놓은 종묘와 창경궁을 육교를 통해 오고 가는 강한 적응력을 가지고 있음도 보여주었다.

특히 이 부분에서 도심 깊숙이 자연지역를 이어지게 조성하면 인공과 자연이 조화할 수 있다는 도시공학적 제안을 띄운 것은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의 눈을 피해 미로같은 하수도로 움직이는 약은 행태나 자연먹이가 부족해 쓰레기통을 뒤지는 계면쩍은 모습은 행여 이들의'생계'가 위협받지는 않을까 우려되면서도 익히 들어온 너구리의 이미지를 연상시켜 저절로 웃음을 자아냈다.무엇보다 공해에 시달리면서 서울이라는 도시에 회의를 품고 있던 '서울깍쟁이들'에게 도시 한켠에는 아직도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이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은 큰 소득이라 할 수 있다. 〈이규화 기자〉

<사진설명>

'종묘너구리'는 인공의 한복판에도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이 유지되고

있음을 보인 희망의 메시지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