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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발언에 악몽 떠올린 하이닉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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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5년간 미국·유럽연합(EU)·일본의 상계관세로 말미암아 하이닉스의 피해가 막심했음을 익히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8일 하이닉스 반도체 홍보실은 몇몇 기자에게 이런 문구로 시작하는 e-메일을 보냈다. 5일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이 “하이닉스가 어렵지만 살리겠다”고 말한 게 e-메일을 보낸 계기였다. 이 장관은 이날 정부 과천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전 세계적인 반도체 불황으로 하이닉스가 적자를 내고 있지만, 이번 위기를 극복하면 훨씬 큰 기회를 잡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다만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때문에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는 없고, 채권은행단 중심으로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본지 12월 6일자 1면>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은 아니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외신들은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이 장관은 8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하이닉스 지원 언급은) 심정적 지원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며, 직접 개입할 생각은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하이닉스는 2001~2002년 몇 차례에 걸쳐 수조원의 채무 조정을 받았다. 만기가 연장됐고 상당 부분은 주식으로 전환됐다. 결정은 채권단이 한 것이지만 다른 나라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당시 몇몇 고위 경제 관료가 공석에서 “하이닉스를 지원하겠다”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를 근거로 미국·EU·일본은 “하이닉스를 한국 정부가 지원했다”고 결론지었다. 이 때문에 자국 반도체 업체가 피해를 보았다며 하이닉스 제품에 27~44%에 이르는 상계관세를 물렸다. 하이닉스 제품은 고율의 관세 때문에 값이 올라 시장 점유율이 떨어졌다.

이 장관의 말대로 하이닉스는 지금의 위기를 넘기면 세계 반도체 업계의 강자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 회사가 흔들리니 산업을 관장하는 장관으로서 안타까움이 앞서 심정적으로나마 돕겠다는 얘기를 하려던 것이었을 게다. 그러나 정부 책임자가 개별 기업을 거명하며 ‘살리겠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장 불똥이 튈까 하이닉스가 노심초사하는 점을 보면 더욱 그렇다.

권혁주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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