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젠 울지마세요 사랑하니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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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제주도에 사는 이승일군은 열여덟 살이다. 아라중학교 3학년 이다. 또래보다 3년이 늦었다. 정신지체장애 때문이다. 태어나 사흘 만에 꼴깍꼴깍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경기를 했다.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지능지수 35~49로 단순한 훈련을 시킬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 그가 동시집을 냈다. 『엄마, 울지 마세요 사랑하잖아요』(연인M&B)라는 제목이다. 시만 봐서는 장애를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감각이 빛난다.

“서쪽 하늘에 우유가 쏟아져 있다/억새가 정석비행장까지 따라온다//와산 가는데/하늘이 우유를 마셔버렸다/와산리는 구름 한 점이 없다//슬프다”(‘구름 우유’)

동시집 『엄마, 울지 마세요 사랑하잖아요』를 펴낸 이승일군과 어머니 고혜영씨.

그러나 수화기 너머 그와 대화를 이어가긴 쉽지 않았다.

-어떤 시가 제일 마음에 들어요?

“나. 헤헤헤헤.”

-학교 가면 친구들이 뭐라고 해요?

“장애인이라고.”

-시 공부는 어떻게 해요?

“생각대로 하면 되고.”

엄마 고혜영(50)씨는 승일이에게 4년간 책읽기를 가르쳤다. 영어·수학은 꼴찌일지언정 언어 감각은 남들 못지 않다고 판단해서다. 대화로 아이의 독창적인 시각을 끌어냈다. “뭐가 보이니?” “몰라요.” “보이는 게 없어?” “단풍나무요.” “단풍나무가 어떻게 하고 있는데?” “떨고 있어요.” “왜?” “바람이 부니까요.” 이렇게 대화가 이어지고, 아이가 한 말은 동시로 다듬어져 공책에 옮겨졌다.

그렇게 엄마의 땀을 씨줄로, 아이의 감수성을 날줄로 삼은 동시집이 세상에 나왔다.

“바람에 단풍나무 가지가 흔들린다/가지가 흔들릴 때마다/나무는 괴로울 것이다/이학년 때 왕따당하고 내가 울었던 것처럼/나무도 울고 있을 것이다”(‘단풍나무’ 중)

그렇게 공책 스무 권이 쌓였다. 아이 혼자 끼적이기 시작한 동시 노트엔 어느덧 엄마 이야기도 담겼다.

“오늘 엄마가 눈물을 흘렸다/텃밭에 돌 발판을 세웠다/흙속에 바퀴가 굴러가는 것 같다//저 동그라미처럼/엄마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단풍나무 아이’)

엄마는 많이 울었다. 아이가 저보다 어린 급우들에게 괴롭힘당하는 걸 보며, 곁눈질하는 이웃들을 보며, 재활 치료를 받으러 서울까지 오가는 험난한 여정 속에서 울었다. 열악한 특수교육 환경에 또 울었다. 그래도 “장애아라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일도 못할 거란 편견을 깨려고” 동시집을 냈다. 책에는 아이의 영혼이 묻어 있었다.

승일군에게 물었다. 시집을 보니 어떠냐고. “감동이에요. 헤헤헤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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