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항생제 남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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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28년 가을 영국인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포도상구균을 배양하던중 우연히 푸른 곰팡이 배양기에 들어간 포도상구균이 용균(溶菌)현상을 일으키는 것을 발견했다.푸른 곰팡이의 어떤 물질이 포도상구균의 활동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

것이다.플레밍은 이를 페니실린이라 명명했다.

그로부터 12년후 E B 체인과 H W 플로리는 페니실린을 화학적으로 안정된 형태로 분리하는데 성공했다.페니실린은 당시 영국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의 폐렴을 치료함으로써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페니실린 이후 지금까지 발견된 항생물질은

1천종이 넘으며,이중 수십종이 항생제로 사용되고 있다.

항생제 개발은 현대의학의 최대업적중 하나다.항생제는 각종 감염증으로 인한 사망률을 낮추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항생제 남용.오용(誤用)으로 인한 부작용이 심각하다.특히 우리나라에선 항생제가 마치 만병통치약으로

인식돼 마음대로 판매되고 제멋대로 복용되고 있다.

항생제로 의한 부작용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 내성균(耐性菌)이다.항생제를 자주 사용하면 세균은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을 변화시켜 기존 항생제로는 잘 죽지 않는 내성을 갖는다.내성균을 박멸하려면 새로운 항생제가 필요하다.그러나 항생

제 개발이 내성균의 출현속도를 따르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다.선진국의 경우 항생제 사용에 아주 신중하기 때문에 내성균이 나타나는 속도가 늦어 새로운 항생제 개발이 상대적으로 덜 시급하다.

우리나라의 항생제 내성균 증가속도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르다.폐렴.축농증등을 일으키는 폐구균(肺球菌)의 경우 86년까지 페니실린으로 완치 가능했으나 90년 내성률이 25% 증가했고,최근엔 80%로 급증해 페니실린은 사실

상 무용지물이 됐다.미국.캐나다는 내성률이 10%에 불과하다.

서울대병원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항생제 내성률 세계 1위 국가다.세균감염질환 치료에 큰 문제임은 물론 어떤 항생제로도 다스릴 수 없는 '슈퍼균'출현 가능성이 어느나라보다 높다.항생제 남용은 당대뿐 아니라 다음세대의 건강에도 악

영향을 미친다.이제부터라도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을 규제하는 한편 내성균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체제 확립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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