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열며>판을 새로 짤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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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에서 출간된'테크노헤게모니'란 제목의 책이 있다.국내에선 강박광박사가 번역해 출간한 책이다.내용인즉 세계사의 흐름에서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헤게모니를 지닌 국가가 있다.그 시대의 첨단기술을 지닌 국가가 그런 국가

가 된다.그런 국가의 헤게모니도 1백년을 주기로 바뀐다.독일이 1백년 잡고,영국이 1백년 잡고 다시 미국쪽으로 넘어간다.지금은 미국이 그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있다.그렇다면 미국 다음으로는 어느 나라일까.

저자는 일본이 미국 다음임을 은근히 내비치고 있다.그가 일본인이니까 그렇게 생각함직도 하다.나는 우리 한국이 미국 다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몇가지 조건만 갖춘다면 우리는 능히 그런 역할을 감당해낼 수 있다.우리는 그런 가능성과 저력을 지닌 민족이다.나는 크리스천으로 성경의 역사관인 섭리사관을 믿는다.섭리사관이란 하느님이 자신의 섭리에 따라 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을 믿는 역사관이다.하느님은 지난 2백년간 자신의 섭리에 따라 우리 민족에 두번의 기회를 주

셨다.그러나 우리가 준비돼 있지 못해 그 기회를 놓치고 민족번영의 기틀을 닦지 못했다.

첫번째 기회는 18세기말 실학운동이 일어났을 때다.공리공론(空理空論)을 일삼던 주자학에 대한 반성으로 양명학이 일어나고 정약용(丁若鏞)같은 어른들이 등장해 경세제민(經世濟民)의 경륜을 펼쳤었다.그때 그런 어른들의 경륜을 조선왕조가

채택했더라면 한반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그러나 李씨 왕조는 그들을 외면했고,경륜가들은 초야에 묻힌채 한숨 쉬는 신세로 기회는 지나갔다.

두번째 기회는 19세기말 개화운동이 일어났을 때다.김옥균(金玉均).서재필(徐載弼)같은 인물들이 등장해 개화운동을 펼쳤었다.그때 수구(守舊)세력이 국권을 농간하지 않고 개혁세력에 민족경영이 맡겨졌더라면 지금쯤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게 됐을 것이다.그러나 그때도 기회를 놓치고 끝내는 일본의 속국으로 떨어졌다.

이제 20세기말에 이르러 우리에게 세번째 기회가 주어졌다.이번 기회마저

살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시 1백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그렇다면 이번

기회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바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해 우리가 해야 할 첫째는'판을 새로 짜는

일'이다.세상만사에 연습판이란게 있다.화투판에도'야씨판'이란게 있고

운동경기에도 서비스게임이란게 있다.나랏일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이제까지는 정치도,경제도,교육도 연습했다 치

고 이제부터 새로 시작하는거다.새판을 짜 새로 시작하는거다.새판에는 새

선수들을 써보자.감독도 바꾸고 코치도 바꿔 새 팀으로 나가는거다.그간에

돈받는 요령을 익힌 일꾼들은 물러나게 하자.자기 지방 패거리만 거느리는

골목대장들도 물러

나게 하자.아들하고만 일하는 일꾼도 마무리짓게 하자.옛어른들의

말에'소인배가 대권을 잡게 되면 백성들의 끼니가 간데 없어진다'고

했다.이제부터 소인배들에게는 국가경영을 맡기지 말자.

그렇다면 누구에게 맡겨야 할까.첫째,민족경영에의 경륜이 있는 일꾼에게

맡기자.둘째,그 경륜을 펼쳐나가기 위해 의논할줄 아는 일꾼에게

맡기자.유능하되 욕심없는 동지들을 모아 밤새도록 의논하고 날이 새면

실천하는 그런 일꾼을 찾아내자

.셋째,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열린 마음에 도덕성을 지닌 일꾼에게

맡기자.넷째는 국민과 국가의 역량을 조직화해 민족발전에 동원할줄 아는

능력을 지닌 일꾼에게 맡기자.

그런 자질을 갖춘 일꾼이 없으면 어떻게 할까.뜻을 같이한 동지들을

모으면 된다.동지들이 모여 슬기와 뜻을 합하면 된다.그래서 판을 새로

짜자.새 판,새 비전으로 백성들을 뜨겁게 하고,신바람나게 하고,희망을

지니게 하자.지금은 사람 몇을 바꿔 일이 될 때가 아니다.아예 판을 새로 짤 때다. 김 진 홍〈목사.두레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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