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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청론>경제 환절기의 지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우수(雨水)가 며칠 지난 요즘 산을 찾노라면 한겨울과 달리 햇살이 눈에 부시고 전에 없던 새소리가 귀에 즐겁다.환절기임이 분명하다.환절기중에서도 특히 겨울을 앞뒤로 하는 두 시기에 계절 바뀜의 느낌이 뚜렷하고 각별한 건강조심이 요

청된다.독감의 맹위(猛威)가 두렵다.어디 계절의 위험이 그뿐인가.

봄에는 화사한 꽃잔치가 문밖 나들이를 유인한다.봄나들이에 경계해야할 것은 꽃가루가 일으킬 수 있는 알레르기성 질환이다.가을에는 산이 단풍놀이로 유혹한다.가을 산행에는 잔뜩 독이 오른 뱀에 물리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그러나 민간의학 속설에 따르면 꽃가루 꿀이 좋은 건강식품이며,가을 뱀이 정력제라고 한다.계절이 병주고 약준다고나 할까.

인간사회의 삶을 따지고 보면 여러 부문에서 이와 유사한 계절 질환을 발견할 수 있다.정치권의 계절 변화는 확연하다.민주정치의 임기제 아래서는 더욱 그러하다.그러나 권력추구자들에게는 정권 초기의 화려함과 말기의 근엄함속에 잠재한 위

험에 눈감은 만큼 현 정권 또는 차기 정권에서의 지위상승 유혹이 강하다.이래저래 치명적인 계절질환자가 발생한다.경제부문의 계절변화는 절기처럼 예정돼 있지 않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 특징이다.호황의 정점에서 경기후퇴,불황의 바닥에서

경기회복으로 이어지는 경기순환은 사후적으로 지적하기는 쉽지만 미리 정확하게 짚어내기는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섣부른 부양책은 곤란'인식 확산

한국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이 경기순환적 현상이라기보다 구조적 성격의 난국이라는 진단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섣부른 경기부양책은 국민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오히려 고질화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 다행이다.이제는 고도성

장이 가능하지도,소망스럽지도 않다고 생각하기로 하자.

그러나 우리의 경제적 계절변화 인식에는 두가지 문제가 있다.첫째는 국민경제적 인식과 계층적 이해관계 주장의 현격한 격차다.

노동운동 지도자 인식착란 문제

가장 두드러진 예가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인식착란이다.국민경제의 대내외 환경을 외면하고 아직도 고도성장 시기의 호경기가 되풀이될 것으로 보고 무리한 임금수준을 요구하고'철밥통'을 지키기 위해 노동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다.정권쟁취수단

으로 이에 동조하는 정치권의 움직임도 국민경제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

두번째 문제는 국민경제가 향후 저속성장 궤도를 달리겠지만 일방적으로 불황의 늪으로 침하하는 방향으로 경제흐름이 전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결여돼 있다는 점이다.국제수지.성장.물가등 거시지표중 어느 하나도 불안하지 않은 것이 없

지만 불안 극복을 위해서는 경제적 계절변화를 예견하고 계절적 위험 예방과 기회포착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성장감속기 불황국면에서 포착할 기회란 무엇인가.그것은 국민경제 각 부문에서 저효율 부분을 과감하게 수술하는 일이다.

구체적으로 노동시장의 비탄력성,기업경영의 비합리성,정부의 규제 마인드,정치권의 과도한 선거비용등을 줄이고 없애고 잘라내는 일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가 바로 요즘같은 어려운 국면이다.겨울의 추위에 몸을 움츠리면 봄맞이하기에 소홀

하게 된다.한겨울에도 가지치기.밑거름 주기에 힘써야 봄의 꽃잔치가 훌륭하다.경제난국을 극복하는 일은 경기 저점에서 국민경제의 저력을 키우는 것이다. 김병주〈서강대 경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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