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북핵 검증 - 경제 지원 포괄적 연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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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6자회담 수석대표 회의에 앞서 한국 측 수석대표인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左)이 북한 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 AP=연합뉴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가 8일 오후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개막됐다. 남북한과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6개국 대표들은 5개월 만에 한자리에 모였으나 핵심 현안인 북한 핵시설의 시료 채취(샘플링) 문제에 대해서는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 채 첫날 회의를 마쳤다. 한국 측 수석대표인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회담이 끝난 뒤 “검증의 핵심사항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검증의정서에)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으나 북한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안 된 것으로 느껴졌다”고 밝혔다.

한국 측은 이날 회의에서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과 검증의정서 채택이 포괄적으로 연계돼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시료 채취를 포함한 구체적 검증 방안을 담은 검증의정서 채택에 북한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에는 북한에 제공키로 한 중유 100만t 상당의 에너지·설비자재 가운데 아직 미집행 상태인 45만t 분량의 지원을 무기한 연기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김 본부장은 “비핵화 2단계를 내년 완료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는데 어느 한쪽이 바라는 조치만 먼저 완료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右)와 성김 대북특사가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의 모두 발언을 듣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반면 북한의 시료 채취 거부 입장은 완고했다. 북한 측 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이날 6자회담에 앞서 열린 김숙 본부장과의 남북 간 협의에서도 “시료 채취 등 검증 문제는 비핵화 3단계인 핵포기 협상에 가서야 논의할 수 있다”는 종전 입장을 반복했다. 북한은 “이번 회담의 목표는 지체되고 있는 대북 에너지 지원의 완료 방안을 확정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제시한 에너지 지원과 검증의정서 채택의 연계 방안에 대해서도 북한 측은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고 익명을 요구한 회담 관계자가 전했다.

이처럼 한·미·일과 북한의 견해차가 뚜렷하지만 10일까지로 예정된 이번 회담에서 어떤 형태로든 합의문이 나올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미국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임기 내 마지막으로 열리는 이번 회담에서 비핵화 2단계(불능화) 마무리라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 적극적이고도 유연한 협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집권 8년 동안 이렇다 할 외교적 성과를 남기지 못한 부시 행정부의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의장국인 중국이 회담 이틀째인 9일 제시할 예정인 검증 관련 합의문 초안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주목된다. 각국은 이 초안을 바탕으로 자신의 입장을 반영하는 수정 작업을 벌이게 된다. 이 밖에 첫날 회의에서는 러시아가 의장을 맡고 있는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실무그룹 회의를 내년 초에 개최하기로 6자 간 의견이 모였다.

한편 김 본부장은 회담 개막에 앞서 열린 남북 간 협의에서 북한의 불능화 조치 11가지 가운데 마지막 이행 사항인 미사용 연료봉을 한국이 구매하기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북측에 타진했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북측이 보유한 미사용 연료봉의 수, 제원, 품질 등에 대한 분석을 끝냈으며 실지로 현장에 가서 미사용 연료봉의 상태와 상업적 가치를 평가하는 절차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베이징=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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