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치욕 ‘2중대’ 터졌다 하면 정치판 발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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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군에서 2중대는 2중대일 뿐이다. 1중대나 3중대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영 의미가 달라진다. ‘한통속’이나 ‘들러리’쯤 된다. 정치판을 들었다 놓았다 할 정도의 파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근래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간 ‘2중대’ 논란이 그 예다. 예산안을 둘러싼 신경전이 치열했던 5일, 민주당은 자유선진당을 ‘한나라당 2중대’로 불렀다. 자유선진당이 예산안조정소위에 참석하는 등 한나라당과 유사한 행보를 하는 데 대한 불만이었다. 자유선진당은 발끈했다. 민주당이 민주노동당과 연대하는 움직임에 빗대 ‘민노당 2중대’라고 맞받아쳤다.

양측이 ‘사과하라’ ‘못한다’고 다투는 통에 7일 예정됐던 여야 원내대표들의 회동이 하루 늦춰졌다.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많았다. 정치권에선 “그 시작이 1985년께부터”라고들 말한다.

그해 1월 정통 야당을 표방하며 신한민주당이 창당했다. 뒤엔 김영삼(YS)·김대중(DJ)이 있었다. 당시 제1 야당인 민주한국당은 이들을 “야비한 야당 분열 집단”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신민당은 유세 때마다 “민한당은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1중대·2중대·3중대 정당”이라고 받아쳤다. 곧 이은 2·12 총선에서 신민당은 85석을 획득, 민한당을 제치고 제1 야당으로 올라섰다.

이후에도 ‘2중대’ 발언은 주기적으로 등장했다. 97년 대선 국면에서 이인제 후보의 국민신당은 “(DJ의) 국민회의가 내각제 개악의 작전본부고 (김종필 총재의) 자민련은 1중대,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은 2중대”라고 공격했다. 이듬해 국민회의와 국민신당이 통합 논의를 할 때 한나라당은 “국민신당이 국민회의의 2중대”라고 쏘아붙였다.

‘2중대’가 사실상 동료를 공격할 때도 쓰인 적이 있다. 지난해 2월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은 여당 탈당 의원들을 가리켜 “(갈 곳은) 민주노동당이나 한나라당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한나라당 2중대라는 얘기가 아니냐”고 비난해 소동이 벌어졌다.

급기야 ‘국경’을 넘은 적도 있다. 2000년 11월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이 DJ의 햇볕정책을 비판하면서 “민주당은 (북한의) 조선노동당 2중대”라고 말해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전문가들은 “2중대 발언은 70년대에 벌어진 ‘사쿠라’ 논란과 유사하다”며 “다른 정치 실체를 인정 않고 타협의 유연성을 거부한다는 측면에선 정당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발언”이라고 입을 모았다.

고정애·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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