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 시시각각

형님 체면 세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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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장황한 나폴레옹 형제 이야기에 독자들도 눈치 챘겠다. 우리에게도 입방아에 오르는 최고 권력자의 형들이 있으니 어려운 추측이 아니다. 권력자의 첫걸음은 집안 단속이어야 한다는 게 동서고금의 진리임을 우리는 안다. 특히 권력자에게 부모 노릇을 대신한 형이 있는 경우는 특히 그렇다. 은혜가 클수록 단속하기 어렵다. 그만큼 탈도 나기 쉽다.

지나간 권력자의 형의 경우는 안타깝지만 관심 밖이다. 엎질러진 물인 까닭이다. 오래전부터 경고음이 울렸는데 권력자가 통제하지도, 스스로 자제하지도 못했다. 합당한 죄과를 치르는 일만 남았다. 형도 동생도 마찬가지다. 현재 권력자의 형은 다르다. 아직 안 늦었다는 얘기다.

어쩌면 비교되는 것 자체가 기분 나쁠 수 있겠다. 사실 대통령의 형이란 것과 집안의 기둥이었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다. 동생을 팔아 치부한 것도, 낯 뜨거운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손해를 봤다. 대통령보다 먼저 정치에 입문해 혼자 힘으로 6선까지 올랐다. 대통령을 정치의 길로 이끈 것도 형이었다. 그런데 우아한 대미를 장식할 경력과 나이에 동생이 대통령이 되는 바람에 국회의장의 꿈을 접어야 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마지막 정치인생을 정치적 기반이 약한 동생을 위한 버팀목이 되는 데 바치겠다고 마음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치 생리에 익숙하지 않은 - 그리고 사람 잘 못 보는 - 동생에게 믿을 사람, 못 믿을 사람 가려주고 늘 가까이서 조언을 아끼지 않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동생이 성공한 대통령이 된다면 그것이 곧 나라를 위한 마지막 봉사라고 믿었을 터다. 이번에 ‘개혁입법 추진 난항 실태’라는 ‘수상한’ 문건을 보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문제가 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형의 위치가 대통령 동생에게 더욱 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는 것 같아 딱하다. 시골 외딴 구석에서 농사짓고 있어도 권력자 형을 들쑤셔 바람 넣는 게 세상인심이다. 그런데 국회 꼭대기 자리에서 당 지도부와 함께 자기 당 의원 성향을 분석한 문건을 들추는 모습을 보이면 그것이 함의한 메시지는 무엇이겠나. ‘상왕(上王) 정치’니 ‘공동 대통령’이니 말들 한다고 섭섭해할 일이 아니다. 나는 그가 “이력서 1000장”을 말할 때 어떤 결단을 내렸더라면 나았을 것이라 믿는다.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없다”는 외침은 공허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이는 구조란 걸 아는 사람들은 안다.

지금 여러모로 힘든 대통령이다. 할 일이 태산이다. 더구나 연말연초 인적 개편이 예상되는 때에 대통령 형이 또다시 주목받는 건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일이다. 그건 돈 몇푼 챙기는 것보다 더 큰 해악일 수도 있다. 쥐고 있는 끈을 놓아야 한다. 그 줄이 느슨할수록 대통령의 발걸음은 가벼워질 터다. 그러면 형님 체면도 따라 서지 않겠나.

이훈범 정치부문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