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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반복된 물류창고 참사 … “자동소화장치들 전혀 작동 안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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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5일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장암리 소재 서이천물류창고 화재 사고의 실종자인 이현석(26)씨의 시신이 7일 낮 창고 지하에서 발견됐다. 이로써 이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7명이 됐다. 부상자도 소방관 1명을 포함해 모두 5명으로 늘어났다. 이천에서는 올 1월 호법면 유산리 ‘코리아 2000’ 냉동창고에서 불이 나 4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소방 당국은 7일 현재 창고건물 안에 잔불이 남아 있고 붕괴 위험도 있어 불을 완전히 끄는 데 일주일가량 더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물류창고에 불이 났다 하면 왜 이렇게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것일까.


◆고쳐지지 않는 안전 불감증=경찰 수사 결과 불이 난 창고에서는 비상벨 감지기 157개, 비상벨 31개, 스프링클러 185개가 설치돼 있었으나 분말 소화기 11개만 사용됐을 뿐 나머지는 작동되지 않았다. 목격자들은 비상벨도 울리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 창고는 10월 18일 소방점검 대행사의 종합정밀점검에서는 별 문제없이 통과했다. 앞서 1월에는 ‘코리아 2000’ 냉동창고 화재사건 직후 시민단체와 합동으로 소방점검을 받았으나 별 지적이 없었다.이 때문에 부실 점검이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월 화재 때는 방화관리자가 작업 편의를 위해 스프링클러와 방화셔터를 수동 조작해 두는 바람에 작동하지 않았다. 1월 화재나 이번 화재나 멀쩡히 갖춰진 방재장비가 작동하지 않는 바람에 사고가 커졌다.

작업현장의 안전 불감증도 문제다. 이천경찰서는 창고 지하층에서 작업을 한 용접공 강모(49)·남모(22)씨에 대해 업무상중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1월 화재 때도 인화성 물질이 가득한 창고 안에서 용접 작업을 하다 불이 났다. 이번 사고를 낸 용접공들은 서이천물류센터 관리업체가 하청을 준 S사로부터 다시 하청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용접 작업이 하청-재하청으로 이어지면서 관리나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경찰은 물류센터 관리업체 4명에 대해서도 출국금지 조치를 요청했다.

◆물류창고 특성도 진화 어렵게 해=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이유로 소방 전문가들은 벽체의 샌드위치 패널을 꼽는다. 샌드위치 패널은 스티로폼 같은 단열재의 양면에 철판을 부착한 건자재다. 높은 단열 효과, 싼값, 편리한 시공 때문에 공장이나 창고 등의 벽재로 많이 쓰인다. 하지만 불이 나면 빠른 속도로 불길을 옮기며 유독가스를 뿜어내 순식간에 인명을 앗아간다. 1월 화재 때도 샌드위치 패널에서 뿜어 나오는 유독가스가 피해를 늘렸다.

거대한 지하공간을 지닌 물류창고의 특성도 피해를 키웠다. 사고가 난 서이천물류센터 지하층은 가로 219m, 세로 60m로 축구 그라운드의 국제표준 규모(가로 105m, 세로 68m)의 두 배나 된다. 1월 사고가 났던 코리아2000 창고는 축구장 3배 규모였다. 거대한 지하공간에다 수십 개의 칸막이로 나누어진 내부 구조도 화재 발생 시 대피나 구조 및 진화를 어렵게 한다.

◆물류창고 점검 강화해야=이천시는 영동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 국도 3호선이 지나는 교통 요충지인 데다 수도권 지역 중 땅값도 싼 편이기 때문에 물류기지가 밀집해 있다. 특히 서이천물류센터와 코리아 냉동창고가 있는 마장면 장암리와 호법면 유산리에는 50여 개의 대형 물류창고가 있다. 최진종 경기소방재난본부장은 “지난 1월 화재 직후 냉동·물류창고에서 공사를 할 때는 인부들에 대한 안전 교육을 강화하도록 관리업체에 당부했으나 잘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며 “대형참사 위험에 취약한 전국의 물류창고에 대한 정밀 실태 조사를 벌이는 한편 화재에 강한 건축 자재를 사용토록 법·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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