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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줄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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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먼 산 너머에서 시작한 섬진강 물길이 이제 막 산을 벗어난 물과 만나 바다로 가는 피아골 외곡리 강가입니다. 할 일 없는 겨울 아침에 섬진강 안개를 볼 마음에 강에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안개는 없고 강을 가로지르는 ‘줄배’를 만났습니다. 강 이쪽과 저쪽에 줄을 묶고, 고리를 걸어 배를 매달고 줄을 당겨 강을 건너는 배입니다.

두 손을 모아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디 가세요?” “밤산에 갔다 집에 가.” 할아버지도 소리를 지릅니다. “아직도 밤이 있어요?” “아니 그냥 다녀와.”
등받이 의자에 점잖게 앉아 계신 할머니가 더 크게 소리를 높입니다. 말이 ‘그냥’이지 노부부는 아마 신새벽부터 밤산에 가서 이곳저곳 손보고, 가꾸고, 다듬고 오시는 길일 겁니다. 겨울에도 부지런한 노부부와 겨울이면 할 일 없다는 중늙은이가 섬진강 한가운데서 만났습니다.

구름이 제 무게를 못 이긴 우중충한 날에 중력을 무시한 줄배가 고요히 강을 건너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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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 사진가 이창수씨가 사진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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