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피치] 158. '아름다운 동반' 송진우·이강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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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대전시내 한 커피숍. '기록의 사나이'들이 마주 앉았다. 송진우(한화)와 이강철(기아)이었다. 동국대 1년 선후배(송진우가 84학번, 이강철이 85학번) 사이기도 한 둘은 올해 프로야구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지난 주말 둘은 나란히 탈삼진 1700개를 넘어섰다. 이강철이 21일 1700개를 최초로 돌파하자 이튿날 송진우가 5개를 잡아내 1702개로 앞서나갔다. 그날은 마침 낮 경기여서 둘은 오랜만에 편안하게 만났다.

"형, 대단합니다. 아직도 선발로 뛰면서 그렇게 싱싱한 걸 보면."

"강철이, 너 중간에 무릎만 다치지 않았어도 나보다 훨씬 잘했을 거야. 몸관리 잘해서 더 오래 해라."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푸근한 덕담이 오고 갔다. 둘은 그렇게 서로를 축하하고, 격려한 뒤 헤어졌다.

송진우와 이강철. 프로야구 최다승 1, 2위이자 탈삼진 1, 2위. 이 기록의 사나이들은 한때 '불편한 사이'라는 오해를 받았다. 1992년이었다. 둘은 다승왕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시즌 마지막 2연전을 앞두고 나란히 18승으로 다승 공동 1위였다. 둘은 9월 17일과 18일 대전에서 만났다. 빙그레(한화의 전신)와 해태(기아의 전신)의 맞대결이었다. 팬들은 마지막 경기에서 선발 맞대결로 다승왕 경쟁이 판가름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1차전에서 송진우가 중간에 구원으로 등판, 19승째를 올리면서 기대했던 멋진 피날레는 이뤄지지 않았다. 빙그레가 6-0으로 크게 앞선 5회초에 마운드에 오른 송진우가 1승을 거저 줍듯 올렸기에 "치사한 승리"라는 비난도 있었다. 이튿날 이강철은 선발로 등판해 8이닝을 완투하고도 1점 차 패전투수가 됐다. 그래서 이긴 송진우보다 진 이강철이 더 떳떳하다는 시각도 있었다. 송진우는 이런 비난 때문에 프로야구 최초로 다승-구원 동시 1위를 차지하고도 투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염종석(롯데)에게 내줬다.

그때 송진우는 "감독님(김영덕 감독)께서 나를 배려해줬다고 본다.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고, 이강철은 "한 순간 서운했지만 진우 형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선배를 감쌌다. 서로 불편해졌다는 건 오해였다.

둘은 그해 선의의 경쟁을 펼친 것처럼 꾸준히 프로야구의 톱 클래스에서 승수를 쌓았고 삼진을 잡아냈다. 하나가 기록을 세우면 다른 하나는 곧바로 전화를 걸어 축하해줬고, 기다렸다는 듯 새 기록을 세워 또 축하전화를 받았다. 둘은 그런 사이다. 농구에 비유를 한다면 이충희와 김현준이라기보다 허재와 강동희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라이벌이 아니라 동반자다. 84년과 85년, 당시 동국대 사령탑으로 둘을 스카우트했던 김인식 전 두산 베어스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대학시절부터 프로까지 20년을 봤는데 둘 다 한결같다. 자기관리에 철저하며 남을 배려할 줄 안다. 그랬기에 지금의 기록이 가능했다고 본다"라고.

송진우와 이강철. 둘은 인생이라는 기나긴 항해에서 동반자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이강철은 둘이 만난 다음날 또 삼진 하나를 잡아내 1701개로 따라붙었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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