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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형님이 혐의 부인 동생 도리도 있어 … 사과는 두고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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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건평씨가 구속 수감된 다음 날인 5일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남 진해시 봉하마을 사저 앞에서 방문객들을 맞았다. 노 전 대통령은 “오늘은 인사를 나누고 싶지 않았지만 인터넷에 공지돼 나왔다”며 시종 무거운 표정을 짓다 10분 만에 들어갔다. 노 전 대통령이 방문객들 앞에서 말없이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김해=연합뉴스]

“형님(노건평)이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는데 형의 피의사실 인정해 버리는 그런 서비스(대국민 사과)를 할 수 없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5일 오후 2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 앞에서 방문객과 만난 자리에서 아직 국민에게 사과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진눈깨비가 날리는 추운 날씨 속에 회색 상의와 감색 바지 차림으로 100여 명의 방문객 앞에 나섰다. 그는 이달부터 월·목 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후 2시 방문객과 만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침울한 표정으로 “오늘은 인사 나누고 싶지 않은데 인터넷에 공지돼 있어 나왔다”며 입을 뗐다. 이어 “오늘로 올해 인사를 마감했으면 좋겠다. 내년 날씨가 따뜻해지면 인사하러 나오겠다”며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기자들 질문이 쏟아지자 동문서답을 하거나 간단하게 답변한 뒤 10분 만에 들어가 버렸다. 달변인 그가 엉뚱한 답변을 하는 것도 이례적이며, 평소 방문객 앞에서 1시간 이상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과도 달랐다. 그는 초기 건평씨의 수사과정을 보도하던 언론에 대해 “카메라가 아무거나 찍어 휘날리는 것 아니다”고 질타했었다.

-사저에 계실 겁니까.

“(어색한 웃음)오늘 오전에 진눈깨비가 내렸습니다.”

-내년 봄까지 어떻게 지내실 겁니까.

“하는 일 뭐 있겠습니까.”

-고향 오셔서 진눈깨비 처음 보는 거죠. 느낌이 남달랐겠습니다.

“예.”

-지금쯤 국민에게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전직 대통령으로서 도리도 있지만 가족의 한 사람으로 형님에 대한 동생의 도리도 있거든요. 혐의 사실 확정되기 전까지 형님의 말 부정하는…, 앞지르는 판단을 말할 수 없죠.”

-어떤 결론이 나든간에 지금쯤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두고 봐서 하겠습니다.”

이날 오전 10시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변호사가 사저로 들어가는 모습이 목격되는 등 건평씨 구속에 따른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것으로 보였다.

◆노건평씨가 현금 박스 받은 자재창고는= 건평씨가 정화삼씨의 동생 광용씨에게서 현금 박스를 받은 곳으로 알려진 텃밭 자재창고는 벽돌과 스티로폼, 철망으로 엮어 만든 허름한 농막이었다. 건평씨 집에서 700여m 떨어진 봉하마을 저수지 인근에 있다. 노 전 대통령 사저 앞을 지나가야 나타난다. 면적 30여㎡ 안팎으로 주로 농기구를 보관하는 이 창고 출입문은 잠겨 있었다.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나무탁자가 놓여져 있다.

마을 주민들은 건평씨가 창고 주변 900여㎡의 텃밭에서 배추와 상추·파·고추 등 밭작물을 가꾸는 데 필요한 농기계를 넣어 두거나 간혹 손님과 친구들을 만난 곳으로 알고 있다. 창고로 가는 길목에는 건평씨가 얼마 전 만들어 세운 것으로 보이는 ‘원건농원’이라고 적힌 팻말이 있었다.

김해=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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