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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인력은 ‘홍수’… 기획인력은 ‘가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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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애니메이션 기획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는 김지영(37)씨는 10년 차 만화가다. 1997년에 순정만화로 데뷔해 2002년부터는 학습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학습만화는 기획능력이 그림실력보다 더 중요하더라고요. 기획이 탄탄해야 실패를 줄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운영하는 ‘기획창작아카데미’에서 1년간 공부한 김씨는 ‘뽀로로’를 기획한 아이코닉스에 입사했다. 탄탄한 기본기에 더해진 기획력을 높이 평가받아 특채로 뽑혔다. “창작 경험에서 그치면 안 돼요. 앞으로는 큰 숲을 볼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 겁니다.” 김씨가 후배들에게 던지는 조언이다.

◆기술인력 넘치지만 고급인재 부족=현재 대학에 설치된 만화·애니메이션·음악·게임 등 관련 학과는 306개교 932개에 이른다. 매년 2만 여명이 넘는 인력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이 기술·제작 인력에 그치고 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인력개발부 지현승 대리는 “대학은 물론 각종 사설아카데미에서도 게임, 만화 등 장르별 기술교육에만 치중해온 탓”이라고 말한다.

애니메이션 ‘빼꼼’을 제작한 RG스튜디오 김광덕 대표는 “예쁘게 만드는 사람은 많지만 ‘팔릴 만한’ 작품을 고민하고 기획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고 지적한다. 뿌까를 만든 캐릭터개발업체 부즈의 구동현 홍보팀장도 “해외 시장을 통찰하는 기획력이 당장 아쉽다”고 말한다. 각 대학·대학원에서 ‘예술경영’ 관련 학과가 속속 생겨나고, 기획창작아카데미가 만들어지는 등 변화가 일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 이에 대해 문화부는 비즈니스 감각과 전문성을 겸비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해외 전문가를 초빙해 일정기간 동안 국내 강사로 유치하고, 국내 인력을 해외로 파견해 현지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산학연계 등으로 윈윈 전략 세워야=관련 인력들이 일할 곳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다. 현재 문화산업 규모가 크지 않고 대부분의 업체가 영세하기 때문이다. 관련학과 졸업생들의 절반 이상이 전공과는 관련 없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 이유다.(그래프 참조) 공연 기획자가 되고 싶어 뒤늦게 대학원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한 김수현(25)씨는 “좋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주변 친구들에 비해 월급도 너무 적고, 일단 진입이 쉽지 않다. 예술의전당 같은 곳에 들어가는 게 꿈이지만 경쟁률이 1000대 1이 넘는다”고 말한다. 부즈, 아이코닉스, RG스튜디오 등 국내에서 손꼽히는 애니메이션·캐릭터 제작업체들은 대부분 작품기획에 집중하고 있어 정규직은 기획프로듀서 등 30여 명에 불과하다. 기획이 끝나고 제작단계에 들어가야 30~40명의 프리랜서 제작인력을 잠시 고용해 쓰는 시스템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익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난타를 제작한 PMC프로덕션 송승환 대표는 “말로만 문화산업일 뿐 아직 ‘산업’이라고 하기 이르다. 대기업처럼 안정적인 일자리가 제공되긴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문화부는 “당장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지만 산학연계가 활발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입장이다. 또 연구실 환경의 ‘창작기지’를 지역마다 조성해 문화콘텐트 전문인력과 학생들의 공동프로젝트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젊은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13년까지 5년 동안 총 2000여 억 원의 예산이 인력양성에 투입될 예정이다. 김광덕 대표는 “문화산업은 아주 장기적인 만큼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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