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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中 교섭에 새 前機-북한의 황장엽씨 망명수용 시사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북한이 황장엽(黃長燁)노동당비서의 망명요청 사실이 알려진지 1주일만에 전격적으로 그의 망명을 사실상 인정하는 공식입장을 밝힌 것은 전혀 예상밖의 일이다.

17일 외교부대변인의 짤막한 발표문에 담긴 내용은 한마디로 '납치라고 생각되지만 망명이라면 굳이 잡지않겠다'는 것이다.북한의 전례로 보아 이는 망명을 확인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북한이 끝까지 黃비서의 납치를 주장하지 못하고 입장을 선회한 것은 무엇보다 이번 사건의 장기화가 북한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이 개입돼 있고 게다가 黃비서의 신병이 중국에 있는 어려움 때문이다.망명신청에 따른 객관적인 정황이나 여론도 북한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黃비서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오랜기간 망명을 준비했고 자필진술서와 사진등 광범위한 증빙자료가 제시됐다.북한으로서는 잘못하다간 명분도,실리도 모두 잃고 외교적 타격만 입을 것이 뻔한 입장이 돼버린 것이다.

다음으로는 이 문제를 조기에 매듭짓고 충격에서 벗어나 김정일(金正日)체제 출범에 주력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올해를 '고난의 행군을 끝마치는 승리의 해'로 선전해온 북한에 있어 돌출 악재인 黃비서 망명은 자칫 권력층 내부는 물

론 주민전체의 동요로 번질 우려마저 안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북한이 이러한 판단을 내린데는 중국측과의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지난 1주일간 북한은 중국과의 접촉을 통해 黃비서의 북한송환이 사실상 어렵다는 점을 깨달았고 결국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게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의 이번 판단은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현명한 외교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黃비서의 한국행에 가장 큰 걸림돌이던 북한의 완강한 입장이 일보 후퇴함으로써 최후의 목적지로 서울행이 유력하게 됐다.

남은 것은 한국과 중국정부의 외교적 교섭과 판단이다.물론 여기에는 상당한 양보를 한 북한측의 입장도 다소나마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黃비서의 망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북한은 앞으로 출범할 김정일 체제에 위해가 될 수 있는 세력을 축출하는 한편 대대적인 세대교체 작업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북한은 이날 외교부대변인의 공식발표 수시간전 이미 내부방송을 통해 항일혁명가요인 '적기가'를 방송하면서 이 노래의 후렴구인 “변절자여 갈테면 가라”를 되풀이해 黃비서의 망명을 허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을 낳았다. <이영종 기자>

<외교부대변인 회견 전문>

우리는 지난 12일 중국의 베이징(北京)에서 황장엽(黃長燁)이 실종된

사건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중국측에 사태의 진상을 조사해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이번 사건과 관련한 우리의 입장은 단순하고 명백하다.황장엽이

납치되었다면 우리는

그에 대해 참을 수 없으며 단호한 대응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그러나

그가 망명을 추구했다면 그것은 변절을 의미하므로 변절자는 갈테면

가라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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