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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 벽에 막힌 시민안전테마파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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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중앙로역에 불이 났어요.” “알겠습니다.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소방차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진다. 통로 정면에 설치된 화면에는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때 모습이 나타난다. 통로 옆 벽에는 각종 대형 참사의 일시와 개요를 적은 현황판이 설치돼 있다. 반대쪽에는 참사 당시 불탄 전동차가 보인다. 시커멓게 그은 벽에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란 추모 글이 적혀 있다.

대구시 용수동의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안 방재미래관의 모습이다. 시민안전테마파크는 팔공산 동화집단시설지구에 있는 안전체험시설이다. 국비와 대구지하철 참사 국민성금 등 250억원이 투입됐다. 1만4000여㎡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다. 재난상황을 가상 체험하는 지하철안전전시관과 생활안전전시관, 방재미래관 등의 전시·체험공간을 갖추고 있다.

시민안전테마파크가 29일 개관을 앞두고 논란에 휘말렸다.

대구시 안전테마파크의 방재미래관.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당시 불탄 전동차와 중앙로역 모습이 재현돼 있다. 작은 사진은 테마파크 전경. [홍권삼 기자]

이곳 마당 624㎡에 들어설 안전상징 조형물의 성격을 두고 인근 주민과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의 의견이 맞서고 있어서다. 논란의 직접 원인은 조형물의 받침대에 희생자 192명의 이름을 새기는 문제다.

대책위는 2005년 대구시 소방본부와 시민안전테마파크 건립에 합의할 때 안전 조형물에 사망자의 이름을 새기기로 약속했다고 주장한다. 시민안전테마파크 건립이 대구지하철 참사를 잊지 말자는 취지인 만큼 희생자의 이름을 남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참사 국민성금 중 50억원을 이곳에 사용할 수 있도록 대책위가 동의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대책위의 황순오(40) 사무국장은 “당시 추모공원 건립을 요구하다 양보한 것도 안전 조형물에 이름을 새기는 것으로 참사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고 판단해서였다”고 밝혔다.

시민안전테마크 주변 동화집단시설지구 주민들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주민들이 시민안전테마파크 건립을 허용한 것은 ‘안전’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예술 작품인 안전 조형물에 희생자 이름을 새길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를 새기면 위령비가 된다고 주장한다. 팔공산자연공원에 추모비가 들어서는 것은 위락지구인 이곳 성격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합의서에도 추모비를 설치한다는 내용이 없다고 강조한다. 동화시설지구번영회 한임동(47) 회장은 “위령비는 다른 곳에 얼마든지 세울 수 있다. 당시 합의대로 ‘안전상징’ 조형물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요구 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양쪽 다 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혀 충돌도 우려된다.

시민안전테마파크 건립에 관한 합의서(2005년 11월)에는 ‘(지하철 참사 희생자) 추모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추모관(유골)은 사업에서 제외하고 위령탑 대신 안전과 추모를 상징할 수 있는 조형물을 설치한다’고 돼 있다.

또 시민안전테마파크 옆 빈터 2300㎡를 정비해 잔디광장으로 조성하는 것도 논란거리다.

대책위는 이곳에서 매년 추모행사를 열겠다는 계획이다. 주민들은 어떠한 추모 집회도 열 수 없게 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대구시 김국래 소방본부장은 “이름을 새길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생긴 문제”라며 “대화로 합의점을 찾겠다”고 말했다.

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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