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정부 황장엽 黨비서 망명처리 놓고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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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국정부가 황장엽(黃長燁)북한 노동당비서의 망명처리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우선 이 사건을 처리할 적절한 법적 근거가 없는데다 정치.외교적으로 뒤따를 후유증이 매우 심각하기 때문이다.중국의 최대 고민은 무엇보다 黃비서 망명요청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국내법이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중국이 유엔'난민지위에 관한 협약'의 가입국임은 분명하다.그러나 대부분 국가의 경우 난민처리를 위한 국내법을 별도로 제정,각종 난민업무를 처리하는 근거로 삼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난민지위에 관한 협약엔 가입했지만 아직 이를 뒷받침할 관련 국내법은 제정해놓지 않은 상태다.더욱이 건국이래 이와 비슷한 사안을 처리해본 전례도 없다.이 때문에 중국은“국제관례를 존중하고 인도적 차원에서 처리해 달라”는 한국측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딱 부러진 명분이 없다.

그렇다고 40여년에 걸친 혈맹우호관계에 있는 북한을 의식하지 않을 수도 없다.어찌됐든 망명행위 발생지역으로 독점적 재량권을 행사해야 하는 중국정부로선 정치적 판단에 의해 이번 사안을 처리해야 하고,싫든 좋든 남북한과 협상에 응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黃비서 망명처리 이후 필연적으로 수반될 북한난민 처리도 심각한 골칫거리다.중국은 지금까지 중국을 통과한 숱한 탈북자들의 한국행에 대해“우리는 전혀 알지 못하는 사실”이라며 불개입 태도를 취해왔다.그러나 이번 黃비서의 정치적 망명을 허용할 경우 한국공관으로 몰려드는 탈북자는 물론 黃비서와 유사한 북한인사들의 망명에 대해 모른체 할 수 없게 된다.

중국으로선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중국이 안고 있는 또다른 부담은 국제사회의 눈길이다.이번 사건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거나 망명을 요청한 黃비서 신변에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국제사회에서의 따가운 비난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특히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들이 중국의 발목을 붙잡는 최대 이슈가 다름아닌 인권문제고,오는 4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될 유엔인권위에서는 중국인권 결의안이 제출될 예정이다.그래서 중국은 남북한 양측에“흥분을 자제하자”고 달래면서 한편으론 묘수(妙手)찾기에 머리를 짜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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