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게이트>의혹 남긴채 사실상 막내린 검찰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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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보 의혹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착수 18일만에 사실상 마무리됐다.검찰은 13일 김우석(金佑錫)전내무장관등을 구속한뒤 그동안 미진했던 부분에 대한 보강수사를 벌이는 동시에 수사발표문 작성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번 수사의 본질을 특혜금융에 대한.외압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라고 규정했었지만 홍인길(洪仁吉)의원등 신한국당 의원 3명과 金전내무장관,국민회의 권노갑(權魯岬)의원등 정.관계인사 5명을 구속하는 선에서 그쳤다.
결국 검찰은 정책 입안및 실행과정에서의 불법행위나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온 갖가지 의혹들에 대해선 거의 규명하지 못해.짜맞추기식 축소수사'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된 셈이다.
검찰은 수사 착수 5일째인 1월31일 한보 정태수(鄭泰守)총회장을 구속한뒤 13일까지 모두 9명을 구속했다.鄭총회장등 한보 관계자 2명과 은행장 2명,金전내무장관,의원 4명등이다.현재까지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난 외압의 주역은 김영 삼(金泳三)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청와대 총무수석을 지낸 洪의원이다.그는 鄭총회장으로부터 8억원을 받고 은행장들에게 한보그룹에 대한 대출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鄭총회장의 구속기간(1월31일~2월19일)내내 수사를해도 의혹의 실타래를 다 풀 수 없을 것같다”던 검찰이 서둘러수사를 종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바람에 검찰 주변에선 수사 외적 요인이 작용하는게 아니냐는 의문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에 앞서 김기수(金起秀)검찰총장은 지난 10일밤과 11일“앞으로 소환될 관계(官界)인사들은 거의 없을 것이고 정치권 인사도 몇명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13일 구속된 金전내무장관등 4명이 사건 수사의 마무리 수순이 될 것임을 시사했었다.
최병국(崔炳國)중수부장도 12,13일 연이어“계속 수사는 하겠지만 구체적 범죄혐의 단서가 발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사실상 수사종결 선언을 했다.이같은 검찰의 움직임은 여권 대선 예비주자를 포함한 정치인 7명의 명단이 잇따라 보 도돼 정계에파문을 던진 시점과 일치하고 있다.
더구나 국정감사에서 물의가 예상되자 적극적인 로비에 나선 鄭총회장이 관련 상임위인 재경.통산위 의원들을 제쳐두고 국방위 소속 鄭.權의원 2명만을 로비 대상으로 삼았다는 수사 결과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재경위원장인 황병태(黃竝泰) 의원도 구속됐지만 국감 활동과 무관한 은행대출 청탁을 받은 혐의여서 뇌물수수보다 법정 형량이 가벼운 알선수재 혐의가 적용됐다.
특히 洪의원에게 돈이 건네진 시기는 청와대 총무수석(93년2월~95년12월)시절이 아니라 국회 통신과학기술위 소속 의원이었던 지난해 2월부터 12월까지였다.그가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큰 청와대 재직시에는 로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수긍되지 않는부분이다.
또 검찰 수사 결과는 黃.洪의원이 은행대출 청탁을 받은 시점이 모두 지난해로 국한돼 있지만 93년말 4천억여원에 불과했던한보철강에 대한 금융대출이 매년 1조원씩 늘어나던 시기는 94년부터였다.수사 결과대로라면 鄭총회장은 지난해 구성된 15대 국회때만 로비를 펼치고 막상 한보철강에 수조원이 투입되던 시기인 14대 국회때는 손을 쓰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이와 함께 鄭총회장은 2천억~2천3백억원을 대출해준 제일.조흥은행장에게 지난해 7월과 9월 각각 4억원을 전달한 것으로 돼있다.이른바.휴가비'와 .추석 떡값'명목의 금품이 전달되는 시기라는 것은 수사 상식이다.그럼에도 鄭총회장이 시중금리의 절반 수준인 산업설비자금을 재직기간중 5천6백억~2천7백억원 대출해준 산업은행 전.현직 총재등 다른 거래 은행장들에게는.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특혜 대출의 본질이라할 사업인.허가나 은행장 인사에 영향력을행사할 수 있는 관계부처 고위공무원등의 개입 혐의에 대해선 수사결과가 전무하다.

<권영민.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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