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규제완화로 돌파구 마련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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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대전시의 성장이 금산군 주민들에게 해로웠을까. 그럴 리 없다. 늘어난 대전시 주민들은 결국 금산 등 주변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대전시는 그들이 이주해 와서 이룩한 새로운 보금자리의 집합체인 셈이다. 대전의 성장은 인근 지역 주민 전체의 성장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를 ‘빼앗긴’ 금산군의 입장에서는 대전시의 성장을 억제하고 싶을 수도 있다. 대전시의 인구 증가와 산업 유입을 억제하면 금산군에서 인구가 덜 빠져나갈 것이고, 대전으로 갈 공장이 하나라도 더 자기 지역으로 올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대전시를 성장하게 놔두고 인근 지역 주민들이 그곳에서 살 곳을 찾고 일자리도 찾도록 해주는 것이 더 나았다. 그것이 지난 60년 동안 대한민국이 성장해 온 방식이었다.

마찬가지로 대구는 인근 경북 군위군이나 칠곡군의 인구를 흡수했고, 광주시가 커지는 과정에서 전남 나주군과 광산군 사람들을 흡수했다. 시골 사람들이 대구와 광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도시 규모가 커지고 인근 지역은 인구가 줄어 노인들만 남게 됐지만, 중요한 것은 그 때문에 가난한 농민의 아들딸들이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이 있었기에 농민의 자식들이 대도시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농촌에 머물렀다면 어림도 없었을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을 막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낙후된 농업국가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수도권 집중 현상도 마찬가지다. 60년 서울의 인구는 245만 명. 이제는 1000만 명이 넘게 늘었지만, 그 인구는 대부분 지방 출신들이다. 원래부터의 서울 토박이는 정말 얼마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란 지방 사람들이 올라와 만들어 놓은 작품인 것이다. 그들이 수도권 성장의 주역이었고, 또 성장의 이익도 나눠 가졌다. 앞으로 수도권의 인구가 더 늘어난다면 그것 역시 대부분 지방 사람들이 올라온 결과일 것이다.

길게 보면 대도시의 이익과 주변 지역의 이익, 수도권의 이익과 지방의 이익은 같이 간다. 그래서 수도권 규제를 풀자는 것이다.

규제를 풀면 수도권으로의 투자가 늘 것이다. 외국 자본도 더 많이 들어올 것이고, 외국으로 나가려는 국내 자본이 이 지역에 머물러 투자하는 액수도 늘 것이다. 소득이 늘고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지방 주민들의 이주는 있겠지만 그것은 더 좋은 기회를 만드는 것이 돼 좋은 일이다.

충북 음성군이나 괴산군, 강원도 원주시 등 수도권 규제로 자기 지역으로 튕겨 나온 기업들을 받아들여온 수도권과의 접경 지역 시나 군은 규제 완화로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서울에서 한 시간이면 닿는 지역들을 과연 지방이라고 봐야 할까. 대전시와 원주시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 전체가 하나의 도시권이 돼 버렸다. 그런데서 수도권·비수도권을 따질 이유가 없다.

국회의원은 대한민국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자기 지역의 이익에만 집착한다면 국회는 지역이기주의의 각축장에 불과해진다. 수도권 규제를 대하는 태도 역시 그래야 한다. 투자가 어디에서 이뤄지든지, 가장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가장 높은 수익성을 내게 하는 것이 한국을 위해 옳은 선택이다. 기업은 규제만 하지 않으면 그런 위치를 찾아서 투자를 하게 마련이다.

길게 보면 수도권의 성장은 대한민국 전체의 성장이다. 지금까지 경제성장의 역사가 그것을 보여준다. 수도권 규제를 푸는 것은 거위의 배를 꿰매어 다시 황금알을 낳게 만드는 일이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