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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위하는 게 돈 버는 길” … 미국은 ‘그린빌딩 혁명’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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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2006년 8월,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이상고온 날씨로 미국 보스턴 MIT대학 캠퍼스는 혼란에 빠졌다. 발전용량 초과로 모든 건물의 에어컨이 전부 꺼진 것이다. 교수·학생 할 것 없이 더워 아우성이었다. 유독 인공지능연구소가 입주한 MIT 스타타센터 학생들만 이런 사실도 모른 채 연구를 계속했다. 에어컨이 꺼졌지만 건물 온도가 섭씨 2도밖에 안 올라 그다지 더위를 느끼지 못한 때문이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 답은 바로 ‘그린(green) 빌딩’에 있었다. 흔히 친환경이라고 하면 당장은 경제성 없는 ‘돈 먹는 하마’ 취급을 받기 쉽다. 얼마 전까지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각광받다 최근의 금융위기 이후 “돈 안 된다”고 조롱받는 이유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 돈 덜 들고, 효과는 훨씬 큰 ‘그린 비즈니스’로 이동 중이다. 보스턴은 이런 개념을 가장 빨리 간파한 도시다. 보스턴은 4650㎡가 넘는 건물을 신축할 때는 친환경인증(LEED)에 준하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단지 공기를 맑게 하려는 게 아니다. ‘그린’이 돈이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17~20일 보스턴에서 열린 세계 최대 친환경 행사 ‘그린빌딩 콘퍼런스’에서도 이런 화두가 논의 중심이었다. 콘퍼런스에 참석한 크리스틴 휘트먼 전 미 연방 환경청장은 기자와 만나 “친환경과 경제성장이 양립할 수 없다는 건 오해”라며 에너지 효율이 높은 상품에 붙이는 ‘에너지 스타’ 프로그램을 예로 들었다. 미국 소비자들이 ‘에너지 스타’ 라벨 제품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한 해 동안 무려 2500만 대 자동차가 뿜어내는 이산화탄소 배출량만큼을 줄였다 한다.

MIT의 스타타센터도 마찬가지다. 2004년 리모델링하면서 건물 전체를 그린 컨셉트로 확 바꿨다. 위에서 아래로 차고 더운 공기를 내뿜는 기존의 냉난방·환기 시스템과 달리 바닥에서 공기를 올리는 방식으로 에너지 사용량을 최소 20~30% 줄였다. 여름엔 에어컨, 겨울엔 난방기를 덜 틀어도 쾌적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자연 채광을 활용한 디자인으로 조명 비용도 낮췄다. 그런가 하면 빗물 관리 시스템으로 물값도 거의 들지 않는다. 친환경 때문에 건축비가 특별히 더 든 것도 아니다.

한국에선 ‘그린’이라고 하면 여전히 태양광 발전 같은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드는 사업을 자주 떠올린다. 그러나 보스턴엔 간단한 장비만 도입해 친환경 건물로 자리잡은 경우가 많다. 유리 외벽 건물로 유명한 매뉴라이프 건물이 그중 하나다. 국내서도 서울 강남의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를 비롯해 유리 건물이 한동안 각광받다 여름철 온실효과로 냉방비가 많이 든다는 게 알려지면서 인기가 주춤해졌다. 그러나 매뉴라이프 건물은 그런 걱정이 없다. 커튼월이라는 2중창을 도입해 여름엔 온실효과를 차단하고, 겨울엔 단열효과를 높인다. 유리 건물이지만 오히려 에너지 소비를 6% 이상 줄인다.

세계 최초의 친환경 도시를 목표로 건립되는 인천 송도국제단지 개발회사인 미국 게일인터내셔널의 존 하인스 대표는 “미 에너지정보부에 따르면 미국 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절반이 빌딩에서 나올 만큼 건물은 온실가스의 주범이 되고 있다”며 “그린빌딩이 해답”이라고 말했다.

보스턴=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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