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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어도 환경도시 만들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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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산이 필요한 것일까? 수많은 도시들이 예산상의 어려움을 들먹이며 환경보호의 한계를 호소할 때 이를 간단히 해결해보인 도시가 있다. 바로 독일의 에칸페르데이다. 이 도시는 에코시티를 이룩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재정이 뒷받침 돼야 한다는 기존의 통념을 가볍게 뒤집고 환경보전과 지역발전의 새로운 공존형태를 만들어냈다. 그 빛나는 지혜의 현장을 들여다보자.

독일의 하우스정원

한적함과 생동감이 공존하는 키일거리

에칸페르데는 독일 북부에 있는 인구 2만 5천의 작은 도시이다. 하지만 이 도시의 중심가는 이른 새벽부터 밤이 될 때까지 사람들의 온기로 가득해서 이곳이 대도시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알고 보면 광장을 서성이는 사람들 대부분은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이다. 근사한 명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유명한 스타가 방문한 것도 아니건만 이곳에는 사시사철 이렇듯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광장과 거리 곳곳을 유영하듯 걸어다니며 마을을 구경한다.

광장의 가장 큰 거리는 키일거리이다. 가장 크다고 했지만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차 없는 거리이다. 키일거리 속에서 지역민들은 빵틀을 내놓고 빵을 구우며 냄새를 풍긴다. 과일장수나 야채상들은 앙증맞은 손수레에 한가득 싣고 나온 싱싱한 과일이며 채소를 보기 좋게 진열해놓는다. 관광객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아트샵과 부띠끄의 쇼핑 가판대는 지역 공예품으로 꾸민 인테리어로 행인들의 이목을 끈다. 거리로 산책을 나온 가족과 연인들은 한결 같이 여유로운 분위기라서 누가 지역민이고 관광객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와 브런치를 즐기는 부부들 사이로 엉덩이를 들이밀면 누구나 흔쾌히 의자를 내준다. 책 한 권 들고 나와서 광장의 벤치에 앉아 한나절을 보내는 것도 평화롭고 휠체어를 밀고 나와서 산책로 한 쪽에서 일광욕을 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이것이 키일 거리의 풍경이다.

이렇듯 한적함과 생동감이 동시에 공존할 수 있는 키일거리만의 비결이 있다. 시에서는 키일 거리로 통하는 수많은 거리들을 모두 차 없는 거리로 단속하고 있다. 무려 1300m에 달하는 중심 거리들이 모두 차량통제 구간인 것이다. 18년 전, 이 정책을 처음 시행했을 때 주민들은 모두 고개를 내저었다. 지리적으로만 놓고 봐도 무리한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의 중심가는 동쪽의 발트해, 서쪽의 빈데바이어만 사이에 끼어 있는 좁은 땅에 불과했다. 그러니 남쪽의 키일 시와 북쪽의 슐레스비히 시를 이어주는 간선도로와 독일철도가 그곳을 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차량소통을 위해서는 중심가의 자동차 진입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건설부와 환경단체는 뜻을 굽히지 않고 주민들을 꾸준히 설득했다. 그리고 설득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동네 상권이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라는 추측이 기분 좋게 맞아떨어졌다. 자동차가 필요 없어진 주민들은 동네 슈퍼로 장을 보러 다니는데 도보나 자전거를 이용한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구나 다 자동차를 몰고 외곽까지 나가서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것이 익숙한 생활이었는데 지금은 집 앞 곳곳에 작은 식품점이나 철물점, 꽃집, 찻집, 가구점 등이 들어와 있다. 소박한 규모의 작은 가게들은 간판이 커다랄 필요도 없고 자동차로 입구가 막혀있을 필요도 없다. 동네에 차가 없어지니 공간이 많이 남게 되어 너도 나도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니 마을의 외경은 날로 아름다워져 관광객들 사이에서 금세 입소문을 타게 되었다. 골목의 아름다운 상가뿐만 아니라 집집마다 주부들의 정성이 담긴 화분이 늘어져 있어 주택가 골목을 누비는 발걸음이 즐겁다. 방문하는 도보관광객들 또한 환경의식이 높아서 마을의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다. 이로써 이곳의 차량통제 시스템은 매우 훌륭한 용단이었다는 것이 자명해졌다. 시에서는 다만 차량을 통제한 것일 뿐인데도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변화를 이룩해냈다.

에칸페르데가 살기 좋은 도시로 유명세를 떨치자 다른 도시에서도 앞 다투어 이곳의 비결을 배우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에칸페르데의 용단과 지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시에서는 시 전체 도로의 50% 이상을 차 없는 거리로 만들기 위해 지금도 계속 구상중이다. 그리고 현재 전체 도로의 70% 이상이 엄격한 교통억제 정책으로 관리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간단하다. 시에서는 삶의 질을 가장 우선으로 놓고 그 다음으로 자동차들이 효율적으로 생활할 방법을 고민했다. 이 과정에서 꾸려진 자동차종합대책 추진단에서는 자동차도로의 반을 자동차 전용도로로 만들고 전용도로가 없는 길은 ‘템포 30’으로 정해서 시속 30km로 속도를 제한했다. 그리고 시 곳곳에는 아이디어가 튀는 주차 시설이 마련돼 있어 사람들의 동선을 돕는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제 주민들 대부분은 자동차가 필요 없어졌다는 것이다. 철도를 이용하는 주민들은 에칸페르데 역 근처에 잘 구성돼 있는 주차장을 이용하고 있는데 날이 갈수록 공동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관광객들 또한 이를 당연하게 여겨서 에칸페르데에 가면 ‘오직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계속)

협조 / 이노우에 토시히코, 사계절 출판사 (번역 김지훈) 주요 참고문헌/ 세계의 환경도시를 가다 (이노우에 토시히코ㆍ스다 아키히사 편저) 기타 참고문헌 / 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 (박용남), 친환경 도시 만들기 (이정현), 도시 속의 환경 열두 달 (최병두), 친환경 도시개발정책론(이상광) / 사진출처 ․ 유럽피안 블로거 sweet.violin@gmail.com

워크홀릭 담당기자 설은영 e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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