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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의 컬처코드] 된장녀와 ‘4차원 캐릭터’는 동전의 양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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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대중문화에는 세상이 반영돼 있습니다. 인기있는 TV프로그램과 영화, 패션과 스타 뒤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과 대중의 욕망이 숨어있습니다. ‘양양의 컬처코드’에서는 대중문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세상 읽기를 시도합니다. 편집자

최근 각종 TV 오락 프로에서 주목받는 캐릭터는 단연 ‘4차원 연예인’입니다. 예측불허 엉뚱한 말과 행동이 마치 딴 세상에서 온 별종같다고 붙여진 이름이죠. ‘안드로메다 연예인’이란 말도 있습니다.

4차원 캐릭터의 지존은 배우 최강희입니다. 미니 홈피에 ‘온풍기와 교신 실패’라고 써놓거나 ‘화성에 외계인이 살까요’하고 진지하게 묻곤 하죠. 늘 자기 세계에 푹 빠진 듯한 그는 혼자놀이의 달인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꿈 속에 살고 있다고 믿으며 지하철 안에서 시체놀이를 하는 엉뚱한 연인으로 나온 영화 ‘내사랑’은 이런 최강희를 겨냥해 만들어진 작품이죠.

엉뚱한 행동으로 대표적 4차원 연예인으로꼽힌 최강희. [올리브 TV 제공]

SBS ‘골드미스가 간다’의 예지원, MBC ‘우리 결혼했어요’의 화요비도 이런 4차원 캐릭터의 대표 주자입니다.

아무 때나 내키는 대로 샹송을 흥얼거리는 예지원은 남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분방함으로 시종 정신없죠. 화요비는 가상 남편이 붙여준 ‘개똥이’라는 별명이 좋다고 킥킥 웃는 독특한 취향을 발휘합니다.

꽃미남 아이돌의 전형을 깬 김현중, ‘무개념’으로까지 보이는 솔비, ‘좌충우돌 주부’ 이승신 등 많은 스타가 ‘4차원 캐릭터’라는 수식어를 얻었습니다.

물론 이런 엉뚱한 캐릭터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예전에도 눈치없고 분위기 깨는 썰렁한 캐릭터나 푼수가 있었죠. 달라진 것은 예전엔 주로 구박덩어리였지만 요즘은 재미있고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입니다. 개성과 자기 주관을 중시하는 세태가 ‘비상식’‘기이함’을 새로운 문화코드로 만들었다고 할까요.

보다 큰 사회적 맥락도 읽힙니다. 사실 4차원 캐릭터의 핵심은 비현실성입니다. 한마디로 현실감각 부족, 현실에서 한 발 붕 뜬 탈현실적인 느낌이죠.

이런 4차원 캐릭터들이 하필이면, 현실적이다 못해 아예 속물적인 ‘신상녀’(‘우리 결혼했어요’의 서인영)나 귀여운 속물귀족(‘엄마가 뿔났다’의 장미희)들이 인기를 끄는 시대에, 이들과 동시에 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한편으로는 아예 된장녀가 돼 물질만능 시대의 승자가 되고 싶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현실 자체를 지우고 싶은 이중심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젊은 층에 인기 높은 일본 사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고달픈 현실에 맞서 싸우기보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현실 자체를 무화시키려는 태도로 보이기도 하고요.

최강희는 SBS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정이현 원작)의 주인공이기도 했습니다. ‘연애=계산=전쟁’이라는 젊은 여성들의 세태와 욕망을 솔직하게 그려 팬들을 열광시킨 칙릿 드라마였죠. 최강희 패션 따라하기 열풍도 거셌습니다. 어쩌면 이때 젊은 여성들은 최강희에게서, 전쟁 같은 현실을 떠나 자유롭게 방랑하고 싶으면서, 동시에 현실에 제대로 안주하고 싶기도 한, 두 가지 모순된 욕망이 충돌하는 자신의 얼굴을 보았던 것은 아닐까요.

4차원 캐릭터의 인기는 ‘88만원 세대’‘트라우마 세대’ 등으로 불리우며 혹독한 현실에 내동댕이쳐진 젊은 세대가, 현실의 무게감을 애써 지우며 비현실로 탈주해가는 징후로 보입니다. 겉으로는 굉장히 달라보여도 속물·된장녀와 4차원 캐릭터의 거리는 생각처럼 멀지 않고, 동전의 양면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처음 ‘4차원’으로 뜬 솔비가 이제 때때로 영악한 현실 적응력을 보여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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