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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빅 3’ 살리기 문제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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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대선 과정에서 자동차노조에 큰 신세를 진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과 민주당은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자금 중 250억 달러를 자동차 업계를 위해 전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특정 산업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에 반대하고 있고, 공화당도 선행 조건으로 구조조정을 요구한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전적으로 자업자득이다. 일본 업체들이 뛰어난 성능의 자동차를, 그것도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시장을 파고들 때 미국 차들은 동일한 모델을 고집했다. 일본 기업이 하이브리드 모델을 내세워 미래 시장을 선점할 때도 미국의 빅3는 SUV나 8기통 대형 엔진에 정신이 팔려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경영진은 자신의 성과급에만 신경썼고, 노조는 오래 전부터 정치 집단으로 변질됐다. 회사 경영은 비효율적이고 방만했다.

빅3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잘못이 많은 데도 핏대를 더 세우는 형편이다. “자동차산업이 망하면 미국 경제도 파국”이라는 협박까지 서슴지 않는다. 동정심이나 애국심일까, 아니면 협박에 굴복한 것일까. 미국 정부는 빅3의 붕괴를 수수방관하지는 않겠다는 반응이다. 오바마는 사망 시한연장에 그칠지 몰라도 어떤 형태로든 빅3를 살리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경영위기에 처한 특정 기업을 정부가 구제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보조금 협정을 위반할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런 우려를 CNN과 인터뷰에서 지적한 바 있다. 유사한 사례는 멀리 갈 것도 없다. 외환위기 당시 대우조선과 하이닉스를 살려낸 한국과 비교하면 된다. 미국은 이를 트집잡아 우리 정부를 WTO에 제소했다. 그러나 그 분쟁에서 우리가 이겼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구조조정이 ‘특정 기업’을 위한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외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위기 상황에서 조선 산업과 반도체 산업 전반을 구조조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조건을 제시하고 신청을 받아 그에 부합한 대우조선과 하이닉스를 선택한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출금 출자전환, 채무상환 재조정 등 채권은행단의 지원은 정부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돈을 빌려준 회사가 망할 경우 엄청난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에 추가로 금융을 지원해 기업을 살린 뒤 채권을 회수하겠다는 ‘상업적 판단’에 따라 내린 결정이었다.

미국 정부가 은행에 빅3 구제금융을 강요하면 통상마찰이 불가피하다. 한국과 일본, 독일과 프랑스도 자국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지원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세계적으로 보호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국제사회는 갈등과 반목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오바마 당선인은 공정무역을 내세웠다. 그러나 공정무역이 곧 보호무역을 의미한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최근 파스칼 라미 WTO 사무총장은 “보호무역주의는 지구촌 전체를 빈곤에 몰아넣을 전쟁의 전주곡”이라고 경고했다.

공정무역은 말 그대로 공정해야 한다. 자국 업체에 대한 차별적 지원으로 외국 기업이 상처를 입는다면 결코 공정하지 않다. 오바마는 그의 저서 『담대한 희망』에서처럼, 담대하게 행동해야 한다.

미국이 외환위기 때 한국 기업들에 줄기차게 ‘홀로 서기’를 요구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빅3에 대한 근본적 처방도 구제금융이 아니라 홀로 서기다. 오바마 정부가 전쟁의 전주곡은 연주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왕상한 서강대 교수·통상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