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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책에 관해 쓴 책’은 또 다른 멋진 신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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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 이력은 한 마디로 남독(濫讀)이었다. 그야말로 체계도 계통도 없이 잡독으로 일관했으니, 어쩌면 중독자의 서탐(書貪)이라고 해도 좋을 듯싶다. 그런 중에도 특히 지(志), 기(記), 록(錄) 등을 즐겨 몇 해 동안은 기문역사서를 찾아 읽었고, 또 몇 해 동안은 여행기를 섭렵해보려고 용썼던 적도 있었으니 소인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그래도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런 책들이 내게 다른 세계로의 나들목이기도 했고, 때론 더 깊은 기록이나 자취를 만날 수도 있었으니 전혀 쓸모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김찬삼 세계여행기』로부터 『동방견문록』『이븐 바투타의 여행기』까지 다 그랬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는‘책에 관해 쓴 책’을 즐겨 읽고 있다. 일부러 모은 것도 아닌데, 50여권이나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상당기간 책· 책방·책읽기에 마음을 걸어두었던 모양이다.

그중엔 오랫동안 인사동의 서사를 지켜오신 이겸노 옹의 『통문관 책방비화』를 비롯해서 서울에서 한때 가장 큰 헌책방을 경영했던 공진석씨의 유고집 『옛책, 그 언저리에서』, 김현과 장정일의 독서일기, 『세계의 고서점』『헌책방마을 헤이온와이』『서가에 꽂힌 책』『지상의 아름다운 책 한 권』『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책-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눈으로 보는 책의 역사』『바스티유의 금서』『책과 혁명』과 같은 책들, 그리고 ‘어느 헌책수집가의 세상 건너는 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조희봉의 『전작주의자의 꿈』, 세상을 떠난 뒤에야 한 권의 책으로 나온 윤택수 시인의 『훔친책, 빌린책, 내책』과 시력 장애로 고생한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는 역할을 맡았던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정말 진지하게 침을 흘리며 읽었던 책들이 있다.

새책 소식지에서 이런 책들의 출간을 알았거나 헌책방에서 이런 책들을 보게 되면, 나는 본능적으로 이 책들을 사려고 했을테지만, 후회해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런 책들은 내 강의실의 지루함을 덜어주는데도 상당히 기여했을 것이다. 이런 책들은 대체로 세상의 일과 삶에 대해서,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우호적이며 돈독했다. 때로는 나의 게으른 책읽기를 각성시켰고, 동시에 책에 대한 익애(溺愛), 혹은 잡서읽기로 소진한 내 인생의 시간들에 대해 심심한 위로를 주기도 했다.

윤석달 한국항공대교수·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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