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왜 근절 안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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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다단계 사기 사건은 지금도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한국식 온정주의 ▶경제위기 ▶ 합·불법 여부에 대한 무관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연세대 황상민(심리학) 교수는 “개인주의가 가치로 자리잡은 서양인에 비해 한국인은 자기 정체성이 뚜렷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법 다단계에 쉽게 빠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국인들은 사회적 성공에 집착하는 편인데, 자기 방식대로 이를 추구하기보다는 일종의 역할 모델인 주변의 성공 사례를 따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 틈을 파고들어 혈연·학연·지연으로 대표되는 한국식 온정주의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사촌 또는 학교 친구가 다단계 판매원 가입을 권유하면 이를 뿌리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폐쇄적 네트워크의 폐해다. 연세대 김호기(사회학) 교수는 “‘관계의 윤리’를 중시하는 한국인의 공동체주의는 잘 발휘되면 구성원 사이에 협력을 이끌어 내는 등 순기능이 있지만 그늘도 있다”고 지적했다.

주식·저축 등 정상적인 부(富)의 증식 수단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도 불법 다단계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환경을 조성한다. 공정거래위원회 특수거래과 이윤기 조사관은 “경제가 어려워 시중에 돈이 잘 돌지 않는 상황일수록 다단계 사기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김호기 교수는 “경제 불황기에 고위험·고수익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 같다”며 “일확천금을 노리고 로또 복권을 사는 것과 비슷한 심리 현상”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유사금융조사팀의 한 관계자는 “경찰·금융당국·언론에서 다단계 사기를 조심해야 한다고 수없이 경고해도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이라는 식으로 넘겨버리는 태도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다단계 사기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정작 유혹이 닥치면 쉽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다단계 판매원으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대학생 1126명을 대상으로 올 9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85.2%가 다단계 업체의 불법 행위를 알게 됐을 때 ‘어떤 법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답했다. 물건 가격의 35%를 넘는 후원수당을 지급할 수 없고, 130만원 이상의 고가품은 팔 수 없도록 돼 있는 다단계 판매 행위의 복잡한 법 규정도 피해자들의 판단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준봉·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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