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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복회는 ‘묻지마 귀족계’ 납치·폭력만 남고 진실은 안개 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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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복회 비상대책회의가 열리고 있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정식집.

월간중앙 지난 11월13일 오후 2시 반께,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한 한정식집에 고급 승용차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대부분 혼자 차를 몰고 나온 중년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주차를 맡기기가 바쁘게 총총히 한정식집 안으로 사라졌다. ‘강남 귀족계’ 사건으로 알려진 ‘다복회’의 계주가 경찰에 체포된 이후 처음 열린 대책위원회 자리였다.

[사건추적] 대한민국 0.1%를 옭아맨 강남 ‘귀족계’ 파문 #‘고수익 보장’에 고관댁 부인부터 자영업자까지 줄줄이… “걸어 다니는 현금은행 수준”

이미 정보를 듣고 온 듯 기자들이 가게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가게 측은 영업을 중지하고 계원이 아닌 사람들은 가게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한 계원으로 보이는 여성이 바쁘게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와 동행인 척 뒤에 바짝 붙어 안으로 잠입했다. 한정식집 가장 위층 공간에 70여 명은 족히 돼 보이는 사람들이 나눠준 자료를 들고 앉아 있었다.

대책위 측 사람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계주 윤모 씨가 그 동안 곗돈을 주지 않은 정황과, 윤씨가 납치와 협박을 당하던 상황을 설명하는 중이었다. 목돈을 잃은 입장들이어서 분위기는 냉랭하고 살벌했다. 모인 계원들은 화려한 차림을 한 중년 여성이 대부분이었고 간간이 남자 계원들도 눈에 띄었다.

이 세계와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수수한 차림의 사람들도 꽤 섞여 있었다. 흥분한 계원들은 “도대체 어쩌라는 것이냐”며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나눠준 자료에서 대책위는 이 사건을 ‘다수인을 상대로 거액의 금원을 편취한 금융사기사건’으로 정의했다. 곗돈을 타지 못한 사람이 절대 다수라는 것이다.

또한 “설문조사를 통해 수사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전하자”며 설문지 작성을 요구했다. 이런 식으로 숨겨진 거액을 찾아 계원들 간에 배분하거나 계주로부터 채권을 확보하자는 주장이었다.

고성 오간 대책회의… 평범한 자영업자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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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회의에서 계원들에게 나눠준 설문지와 미납자 명단.
잠시 후 식당 직원이 “허락 없이 들어온 기자는 나가달라”고 요청해 자리를 떠야 했다. 식당 앞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은 “계원 전체 명단이 든 CD가 있다”는 등 정보를 교환하고 있었다. 한 기자는 “우리도 계원들의 말에 놀아나는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피해자가 한둘이 아닌 데다 이들이 자신의 돈을 찾기 위해 명단을 흘리는 등 언론을 이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지난 10월 말 몇몇 언론에 ‘강남 귀족계’라는 별명이 붙은 ‘다복회’ 사건의 전말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이 계원 명단에 고위 공직자와 그의 가족, 연예인 등이 들어있다는 소식이 퍼지자 언론 전체가 나서서 이 사건을 바짝 추적하기 시작했다. 계주가 굴린 돈의 추정액이 처음 알려진 것보다 훨씬 큰 2,000억 원대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커지는 상황이다.

윤씨가 직접 작성했다는 계원 명부를 입수했다. 많게는 50억 원부터 적게는 3,000만 원까지 명단에 적혀 있는 금액은 천차만별이었다. 마지막 쪽에는 “대략 90명 정도가 부실 난 부분이며 금액으로 300억 정도 된다. 금일 현재 파악된 인원은 70명 정도에 금액은 240억으로 확인됐다. 회수가능 금액 200억”이라고 자필로 적혀 있었다.

사건의 전말을 살펴보자. 계주 윤모(52) 씨는 도곡동에서 유명한 한정식집 W의 주인이었다. 그는 1990년대 후반 강남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하며 연예인을 비롯한 부유층 유명 인사들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계를 시작한 시점은 2001년께. 윤씨는 유명 연예인과 소위 ‘힘 있는 집’ 사모님들을 대거 내세워 신입계원을 유치했다.

계 조직은 은밀하게 운영됐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아는 계는 친목으로 묶인 사람들이 계원인 경우가 많은데, 윤씨의 계는 달랐다. 점조직으로 운영해 신분 노출을 꺼리는 부유한 인사들을 감춰줬다. 무엇보다 다른 계에 비해 월등한 수익률에 이끌린 계원이 많았다. 어떤 계원은 26개월 동안 6,000만 원 정도를 붓고 1억 원을 타갔을 정도다.

‘귀족계’ 형성에서 경찰 수사까지

2001년 강남 부유층 중심으로 결성.
2002~06년 유명세 타며 소위 상류층 집단으로 급부상.

2008년7월 자금 70억 원 미회수. 자금 압박 시작.
10월25일 계주 윤씨 잠적.
27일 강남구 도곡동 음식점에서 계원 100여 명 1차 대책회의. 윤씨의 육성 담긴 테이프 전달.
30일 2차 대책회의. 윤씨에게서 “7일 100억 원 들고 와 해결하겠다” 연락.
11월3일 3차 대책회의. 고소파와 반고소파 갈등 격화.
4일 강남경찰서, 계원 박씨 등 2명의 고소장 접수. 수사 착수.
11월7일 윤씨, 4차 대책회의에 나타나지 않음.
11월12일 윤씨 경찰에 자진 출석. “계원이 돈을 안 냈을 뿐, 떼어먹은 것 아니다”라고 주장.

11월13일 5차 대책회의. 대책위 측, 계원 상대 설문조사 통해 윤씨 자금에 대한 정보 수집.

윤씨는 계원들에게 빨간색 수첩을 나눠줬는데, 이 수첩이 부유층의 상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금색으로 ‘다복회’라고 적힌 이 수첩의 뒷면에는 돼지가 돈다발을 물고 있는 그림과 “부자 되세요”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다복회는 번호계와 낙찰계를 모두 운영했다. 번호계는 애초에 순서를 정해 곗돈을 타가는 전형적인 방법이고, 낙찰계는 받을 돈을 경매 방식으로 적어내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먼저 받는 식이다.

계원들은 “계 구성은 대부분 20여 명 단위이며, 규모는 2억여 원 안팎”이라고 전했다. 낙찰계의 경우 마지막 순번은 매달 600만~1,000만 원씩 1억5,000여 만 원을 붓고 1년6개월 남짓 만에 2억 원을 타는 ‘고수익’ 배당이었다. 경제범죄를 전담하는 한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낙찰계는 정기적으로 곗방에 모여 누가 받을지 무작위로 정한다. 화투장을 뽑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보통 뒷 번호를 받는 사람은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앞 번호로 하나 더 붓기도 한다.”

얽히고설킨 기업형 계 “돌려막다 터졌나?”

실제로 다복회 계원의 30%는 두 개 이상의 계좌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 중 만난 한 계원도 “나도 두 계좌로 넣고 있다”고 증언했다. 다복회의 문제점은 금융기관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현금동원력을 자랑하며 ‘기업형’ 계 조직을 운영했다는 점이다. 기업형 계는 계주 한 명이 계를 20~30개씩 운영한다.

아예 사무실 하나를 빌려 전담직원을 두기도 한다. 윤씨도 자신이 운영하던 인테리어 사무실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거의 매일 계를 열다시피 했다고 직원이 밝혔다. 이 업체의 직원 2명이 다복회 운영을 도맡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이런 기업형 계는 조직이 아주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계주는 한 명이되 그 아래 ‘새끼 계주’가 잔뜩 포진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다른 계를 운영하는 계주가 그 자금을 들고 다복회에 가입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새끼 계주 밑에 있는 계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복회 계원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계원 중에는 액수가 적은 돈을 붓던 중산층 계원들도 있는데, 이들 중 일부는 “윤씨의 얼굴 한번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계주와 계원 간에 일면식도 없이 돈을 불입했던 것이다. 윤씨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된 것은 지난 10월28일. 지난해 5월23일부터 지난 9월20일까지 매월 불입금을 낸 박모(44) 씨에게 만기가 된 2억 원을 주지 않는 등 4명에게 줘야 할 계금 28억 원을 갚지 않은 혐의다. 윤씨는 또 곗돈 가운데 5억8,000만 원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윤씨는 경찰 진술에서 초지일관 “일부 계원이 곗돈을 내지 않아 그렇지 내가 곗돈을 떼어먹은 것은 아니다”라고 혐의를 적극 부인하고 있다. 도대체 윤씨는 왜 곗돈을 제 때 지급하지 못한 것일까? 지금 밝혀진 자금 규모로 보면 윤씨는 어마어마한 현금을 손에 쥐고 있었을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큰손들이 일부 계원이 돈을 안 냈다고 곗돈을 못 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번에 고소한 사람들은 그리 큰 액수도 아니다. 자기네들의 현금동원력으로 충분히 사전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보유한 현금으로 다른 투자를 했다 날렸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윤씨에 대한 여러 소문 중 부동산투자를 했다 돈을 날렸다는 것도 있다. 경찰은 윤씨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원들의 말에 따르면 윤씨는 운영에 차질이 발생한 지난 7월 이후에도 계속 신규 계원을 받아들였다. 당시 들어오지 않은 계금이 70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현재 경찰은 윤씨가 다복회 내규에 명시된 대로 보증인을 세우지 않고 계원을 가입시킨 것과 일부 자금을 떼어먹은 것을 들어 배임과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윤씨는 지난 10월25일 잠적해 계원들의 속을 태우게 만들었다. 그러나 11월12일 자진해서 경찰에 나타난 윤씨는 “그 동안 일부 계원에 의해 감금당해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자신들을 감금하고 폭행한 계원들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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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12일 경찰에 자진 출석한 계주 윤씨가 조사를 받고 있다.

납치·감금·폭력… 추악한 이면

지난 10월27일 계원들이 모인 대책위 모임에는 윤씨의 육성이 담긴 녹음 테이프가 전달됐는데, 여기서도 윤씨는 “사람들이 사무실에 와 행패를 부리고 나를 차에 태워 끌고 갔다”며 “풀려난 뒤에도 위협을 느껴 나오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씨는 또 “나뿐만 아니라 공동 계주인 박모 씨도 납치됐다”며 흐느끼기까지 했다.

그러나 윤씨의 감금설을 두고 일부 계원은 “시간을 벌려는 수작”이라고 비판했다. 다복회 사건을 취재하던 중 경찰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윤씨의 비서 역할을 한 다복회 핵심 멤버인 박씨라는 인물이 있다. 현재 행방이 묘연한 그는 계원들의 고소장에도 피고소인으로 등장한다.

그가 지난 11월 초 한 경찰서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당시 박씨를 목격했다는 한 관계자의 말이다. “한 남자가 찾아와 ‘나를 유치장에 며칠만 넣어달라’고 말하는 둥 횡설수설하더라. 들어보니 다복회 계주 윤씨와 함께 감금돼 있었는데 도망쳐 나왔으니 자신을 보호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말하는 도중에도 온몸에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한 계원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윤씨와 박씨가 함께 H호텔에 감금돼 있었다고 한다. 박씨는 어떻게 탈출해 경찰서로 갔다는데, 다복회 회원인 사업가 홍씨가 데려온 용역 직원들이 잡아간 것이었다고 들었다.”윤씨는 홍씨가 곗돈을 받지 못할까봐 자신을 납치했다고 진술했다.

일부 계원들 사이에서는 이미 윤씨의 재산 중 일부가 홍씨 소유로 바뀌어 있다는 말도 나왔다. 이에 홍씨는 자진해서 경찰에 출두해 폭행과 감금 등 자신이 고소당한 혐의 일체를 부인했다. 사기와 배임 등 민사사건에서 형사사건으로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13일 3시에 시작한 대책회의는 5시가 되도록 끝날 줄 몰랐다.

몇몇 계원은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으로 가게를 나와 담배를 피워댔다. “솔직히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합니다. 다만 바보는 되지 말아야죠. 고소한다는 사람도 있고 않겠다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윤씨와 친분이 있다는 사람은 아직도 ‘납치당했었다고 하니 조금만 더 시간을 줘보자’고 말하네요.”

일부 계원은 “저게 무슨 귀족계냐!”며 소리지르기도 했다.“안에 들어가 보세요. 참 어려운 사람들 많습디다. 강남 사는 부자는 저 안에서 20%도 채 안 돼요. 다 형편이 어려운 자영업자들이지. 이건 귀족계가 아니라 양아치계예요!”계원들의 타는 속과 무관하게 입을 다물고 있는 관련자들도 있다.

한 언론사가 최근 입수한 203명의 회원 명부에 따르면 야당의 거물 정치인과 공기업 전 사장, 고위 장성과 판사 등 최소 10여 명의 사회 지도층 인사의 부인과 친척이 다복회에 가입해 있었다. 계원들이 말하는 정보를 종합해보면 대기업 창업주의 딸, 모 그룹 회장의 부인 등 재벌가의 여인들에서부터 법조계 인사의 가족까지 대거 연루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거금을 넣는 상류층 사람들은 ‘바지사장’처럼 ‘바지마담’을 내세워 가명으로 돈을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 사회 지도층과 연예인은 ‘특별회원’으로 관리되고 있었으며, ‘장군 사모님’과 같은 식으로 주요 인사와의 관계를 기재해 놓았다. 탤런트 L씨와 가수 K씨, 개그우먼 K씨 등 연예인의 이름도 확인됐다.

항간에는 배우 L씨가 연예계 인맥을 다복회에 연결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사건은 점점 심각한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제도권의 추적을 받지 않는 계의 특성상 정치자금이나 조직폭력배의 자금이 세탁을 위해 다복회로 흘러들었을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박미소 기자 smile8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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