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어디 諫議大夫는 없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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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다시.정관정요(貞觀政要)'를 펼쳐본다.중국 당(唐)태종의 뛰어난 치세를 기록해 놓은 이른바 리더십의 교본이다.생각했던대로거기엔 많은 교훈이 들어 있었다.그 중에서도 필자의 시선을 끄는 대목은 두가지였다.첫째,임금은 백 사람의 순 종보다 한 사람의 직언을 구하라는 것,그리고 두번째는 신하의 특성을 여섯가지 바른 경우(六正)와 여섯가지 삿된 경우(六邪)로 나누어 모름지기.육사'를 멀리하고.육정'을 가려 쓰라는 충고가 그것이다. 태종은 중국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당조(唐朝)의 시대를 연성군(聖君)으로 꼽힌다.그러나 그의 위대성은 그만의 것이었다기보다 그를 보좌한 발군의 인재와 동고동락함으로써 가능했다. 그의 주변엔 언제나 바른 말을 서슴지 않는 간의대부(諫議大夫)가 있었다.요새 말로 하면 충신이다.예를 들면 한보특혜에 대해 진작부터.아니되옵니다'라고 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당태종을 보좌했던 신하들은 대체로 여섯 부류의 바람직한 인물형으로 분류된다.세태의 흐름을 미리 읽고 작은 조짐에서 국가 존망의 징후를 찾아내 미연방지책을 세울줄 알았던 성신(聖臣).임금의 장점을 북돋우고 결점을 보완해 바르게 이끌 고자 했던 양신(良臣).맡은 일에 충실해 늘 선정을 최촉했던 충신(忠臣).일의 성패를 알고 위기 대처 방안을 품의했던 지신(智臣).준법 청렴의 정신(貞臣).나라가 어지러울 때 면전에서 잘못을 간했던 직신(直臣). 짐작컨대 그런 신하를 거느린 임금이라면 스스로 위대하고 싶지않아도 절로 뛰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그런데 당태종은 본인도 성군의 자질을 갖고 있었다.무엇보다 그가 사가(史家)들의 칭송을 끌어모으게 된 것은 그 자신이 편신(偏信 )보다 겸청(兼聽)을 통치의 기본으로 삼았기 때문이다.말하자면 가신(家臣)만 믿고 국정을 다룬게 아니라 여러 신하의 충언.고언을 고루 겸청한 것이다. 예로부터.용장(勇將) 밑에 약졸(弱卒)없다'고 했다.태종이 스스로 편신 아닌 겸청에 능했기에 그밑에 육정의 신하가 모여 들었고 간의대부가 늘 좌우에서 보필했던 것이다. 그럼 지금 우리의 사정은 어떤가.대통령은 문민개혁의 창도자로서 단 한푼의 정치자금을 받지 않는 강직청렴의 기치를 진작부터내걸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밑에는 응당 육정의 신하,간의대부들이 모여 있어야 했다.그러나 지난 4년,부정에 연루되어 쇠고랑을 찬 장관.기관장이 그 몇이었던가.측근들은 또 얼마나 많은 구설수를 몰고다녔던가.온갖 개혁조치들이 유명무실해지고 정치. 경제.사회.안보 각 분야에서 또 얼마나 많은 혼선과 비능률이 있었던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지만 이 정부는 예외였다.또.용장밑에 약졸 없다'했지만 이 정부엔 육정의 신하도,간의대부도 없었다. 오히려 국민의 눈에 비친 대통령의 부하들은.정관정요'가 경고하고 있는 육사의 부류에 가까운 편이었다. 자리에 안주하며.윗분'의 심기를 살피기에만 급급한 견신(見臣).날치기를 정당하다고 역설하는 유신(諛臣).PK출신을 유능인사로 왜곡 추천하는 간신(姦臣).정치세력간의 이간을 부추기고 강경일변도로 몰고가는 참신(讒臣).권력을 이용해 파벌을 조성하고 나라의 안위보다 정권창출에만 몰두하는 적신(賊臣).붕당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망국지신(亡國之臣)은 없었던가. 물론 한나라의 현관(顯官)들을 이렇게 매도할 수는 없다.해서도 안된다.그것은 누워서 침뱉기요,우리 모두를 비참하게 만드는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번씩 실형을 받은 사람에게 수조원의 특혜를 준 장본인들,경제를 이 지경으로 거덜나게 만든 사람들,나라 전체를 걷잡을 수 없는 정신적 공황 상태로 몰아간 사람들,자리를 이용해치부(致富)한 사람들,패거리를 이뤄 국정 구석 구석을 어지럽힌사람들,그들을.육사'로 분류해도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아무려나 작금의 시국은 파탄 일보전이다.대통령으로서는 크나 큰 시련의 순간이다.레임덕 현상 때문이 아니라 나라의 먼 앞날을 책임질 일 때문이다. 어디 훌륭한 간의대부는 없을까.대통령은 빨리 그런 사람을 찾아 겸청해야 한다.그것만이 시국을 헤쳐나갈 길이다.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高 興 門 〈前국회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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