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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26년 만에 간첩 누명 벗은 ‘오송회’ 교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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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오송회’ 간첩단 사건으로 기소돼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던 관련자 9명 전원이 그제 광주고법의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공안 당국은 1982년 당시 군산제일고 전·현직 교사 5명이 4·19와 5·18 희생자 추모제를 지내고 금서(禁書)를 읽은 사실이 드러나자 이들이 이적단체를 구성한 것으로 몰았고, 이후 관련자 4명을 추가해 간첩단 사건으로 발표했다.

재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찰과 검찰의 조서는 고문과 협박·회유에 의한 것으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당시 재판 과정에서도 이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들의 호소에 귀를 닫은 채 유죄를 선고해 옥살이를 시켰다가 26년 만에야 누명을 벗겨준 것이다. 오죽하면 재심 재판부가 “억울한 옥살이로 인한 심적 고통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법원을 대신해 머리 숙여 사죄 드린다”고 했을까.

과거의 잘못된 판결이 재심 절차를 거쳐 바로잡힌 게 이 사건만이 아니다. 법원은 지난해 1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20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8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데 이어 나머지 관련자들에 대해서도 잇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달엔 조기잡이 중 납북됐다가 풀려나 간첩 혐의로 옥살이를 했던 서창덕(62)씨가 24년 만에 간첩 혐의를 벗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이처럼 잘못된 판결을 했을 가능성이 있는 사건은 대법원 스스로 추려낸 것만도 224건에 이른다. 이 때문에 이용훈 대법원장은 지난 9월 ‘사법 60주년 기념식’에서 “사법부가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해 실망과 고통을 드린 데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사법부가 잘못된 판결에 대해 진정 사죄한다면 재심 절차를 서둘러 관련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 다시는 정치 권력에 의해 재판이 휘둘리는 일이 없도록 사법부 독립을 확고히 해야 한다. 피해자들에게 국가 배상도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다 해도 억울하게 잃어버린 이들의 청춘은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