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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프리즘>사물놀이 20년 김덕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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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역사가 깊으면 허물도 쌓이는 법이다.사람이나 조직이나 국가나 매일반이다.자칫 허물이 누적되다 보면 언젠가는 그것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이전 업적을 깡그리 무너뜨린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오히려 적당한 허물은 공적를 더욱 빛내주는 반사경이 된다.마치 방짜의 녹을 벗기면 반질반질 윤기가 보이듯 때를 털어내야 진면목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5척 단구로 세계를 휘어잡은 사물놀이의 달인 김덕수(金德洙.
45).지금껏 누구에게나 각인된 신화화된 달인의 경지만이 과연그의 참모습인가.이제 그 단계는 아닌 것같다.세월이 흐르다보니자연스럽게 그에게도.먼지'가 쌓인 것 같고 스 타로서의 고독과고뇌도 이젠 깊은 것같다.
그가 21~27일 서울 대학로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벌이고 있는 난장(亂場).김덕수데뷔 40년,사물놀이 20년-코리아환타지'공연은 우상화된 그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해주는 무대이자 작금의 고뇌를 확인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 레퍼토리는 모두 넷.항상 사물놀이의 시작을 알리던.비나리'를 비롯,.삼도설장구가락'.삼도농악가락'.판굿'으로 이어진다..사물놀이'하면 흔히 연상되는 옛 그대로의 판제(프로그램)로 손님을 맞고 있다.
그러나 이런 판제는 오늘날 김덕수가 이끄는 한울림예술단의 한계와 딜레마를 보여주는 일례가 된다.크로스오버 활동에 치중하면서 정작 국악개발을 게을리한 탓에 비롯된 레퍼토리의 빈곤.20대 후반 젊은 연주자들을 모으다 보니 정열은 대단 하지만 공력(功力)이 안보여 감동이 덜한 점.그가 일거에 우레처럼 뿜어내는 신명의 강도가 이전만 못하다는 얘기다.
명예를 얻은 대신 상업화 물결에 휘둘리면서 그의 예술혼이.죽어가고'있는 것은 아닌지,바로 그 점이 안타까운 대목이다.사물놀이로 지난 20년(무대에 선 것은 5세때부터 40년에 이른다)동안 김덕수가 쌓아올린.공든 탑'은 실로 대단하 지만 이제 세월의 깊이만큼 때도 낀 것인가.
그는 이번 기념공연을.회귀의 무대'로 집약해 표현했다.21세기를 목전에 둔 마당에 온고지신의 기회를 갖고자함이었다.때문에그는“다시 난장(옛날 뭇사람들의 온갖.짓거리'가 용납되던 축제의 공간)을 열어 그 시대정신을 되새겨 보고자 했다”고 밝혔다.고루했던 전통에 반발하면서.이단아'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온불굴의 정신세계를 다시 구현해보자는 뜻으로 보였다.
“사물놀이는 창단때부터 두가지 목표가 있었다.하나는 타악기로이뤄진 농악과 군악(群樂).무속등 전통 레퍼토리의 복원과 교육이었고 다음은 국악을 바탕으로 한 서양음악과의 만남이었다.지난20년동안 이 작업은 중단없이 계속됐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김덕수는 순수 국악의 영역확장보다 서양음악과의 만남을 우선한 듯이 비쳤다.국악과 재즈의 만남,국악과 오케스트라의 만남등 크로스오버 공연에 집착했다.물론 그가.신토불이'로 거의 유일하게세계무대에서 각광받는 예술인 이 된 것도 다 이 덕택이긴 하지만. “클래식.재즈와 만난다고 해서 단 한번도 우리 전통의 핵심을 저버린 적은 없다.어떤 가락과 장단을 쓸 것인가 선택의 문제만이 있었다.크로스오버 활동에 중점을 두는 것은 궁극적으로사물놀이의 세계통합을 위한.우회전략'이다.연주를 해보 면 우리의 사물은 세계 어느 타악기보다 울림이 크고 기운이 세다.” 그는 이러한.우회전략'의 성공사례로 일본의.다이코(大鼓)'를 꼽았다.아무리 아프리카의 리듬과 가락을 도입해도 다이코는 엄연히 일본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을 그는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활약은 그를.대량생산시스템'의 함정으로 내모는 결과를 빚은게 사실이다.이곳저곳 불려다니면서 물건을 만들듯 공연하다보니 예술가로서 정작 잃은게 많다.
한창때 김용배.이광수.최종실등.오리지널 멤버'들과 공부하면서곧 바로 무대에서 실험하던 농악과 무속.불교음악을 아우르는 레퍼토리의 발굴과 교육을 이제 다시 꿈꿀 수 있을까.그 르네상스의 퇴조가 아깝다.
“선배와 스승이 있던 옛날만 해도 연주자이면 족했다.열심히 연주만 하면 됐다.그러나 시대와 처지가 바뀌었다..행위'를 위한 기획까지 해야하니 공부할 시간이 없다.어쨌든 떳떳하게 자립적인 예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자랑스런 일이 ■ 닌가.” 그가 벌이는 사업을 보면.공부'못하는게 이해는 간다.그는 세칭.김덕수패 사물놀이'랄 수 있는.한울림예술단'(93년 발족)을비롯해 청소년 예술단.새울림',민속악단.매나리',부여 사물놀이교육원,양평 공방(악기)교육원,기획.홍보.음 반등을 맡는 .난장 커뮤니케이션즈'를 실질적으로 총괄하고 있다.그는 신체장애인예술단.다스림'창단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를 포함(통장에 입금돼 잘 모르지만 자신의 월급은 2백50만원 정도인 것 같다고 했다)해 월급을 받는 직원도 51명이나되고 월 경상비가 7천만~8천만원(연매출 10억원 정도 예상)에 이르는 대규모 집단의 장이다.그는“연평균 1 백50~2백회정도의 국내외 공연을 갖는다”며“유지비의 8할 이상을 이 공연료로 충당한다”고 밝혔다.
자신의 뒤를 이을 차세대가 없는 것도 그의 당면 문제다.국내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사물놀이 연주자의 대부분이 그의 문하를거친 사람들이지만 확실히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그가.공부'에 정진할 수 없는 것도 잦은 멤버 교체 탓이다.
열심히 써먹을 만 하면 곁을 떠나다 보니 늘 새로운 사람을 뽑아 가르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할 판이다.
“기량의 문제는 본인의 노력과 천부적인 재능에 달렸다.당초 후계자를 양성하기 위해 학교를 운영했고 줄잡아 1천여명의 전문연주자를 키웠다.그들이 직업인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된 것만도 다행이다.” 그는 아직 후계자를 생각할 때가 아니라고 한다.“옛날보다 힘은 못해도 시간이 흐를수록 공력은 강화됐다”며 자신감이 넘친다.
“.난장 커뮤니케이션즈'사무실 내에 인터넷 방송국을 곧 오픈한다.이러면 인터넷을 통해 안방에서도 사물놀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지난해 1주일동안 베를린 우파 파브릭에서가졌던 종합 문화이벤트(난장)를 서울(국립극장)과 런던.아일랜드.LA.뉴욕등에서 확대 개최할 것이다.또한 9월에는 일종의.
트리뷰트 앨범'두장을 난장이란 타이틀로 낼 예정이다.” 다소 독단적인 일처리와 명예욕으로 주변사람들로부터 부덕(不德)하다는충고를 받기도 하는 김덕수.그래도 그가 일군 업적을 훼손할 만큼 아직은 허물이 많지 않아 “조만간 세상의 모든 연주자들이 사물로 연주할 날을 만들고 말겠다”는 그 의 각오는 일단 믿고지켜봐야 할 것같다.
〈글=정재왈.사진=안성식 기자〉 ▶52년 대전 출생 ▶57년부친(김문학)의 대를 이어 조치원 남사당패에 들어감 ▶65년 대전 신흥국민학교 졸업,한국민속가무예술단.리틀엔젤스 입단 ▶71년 국악예술학교 입학 ▶78년 사물놀이 창단 ▶80년 한국 전통예술연구보존회 발족 ▶90년 평양 범민족통일음악회 참가 ▶93년 사단법인 한울림예술단 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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